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 시리즈’가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교향곡 10번(미완성곡) 1악장과 교향곡 1번 연주로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연주가 끝난 뒤 부천 필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임헌정씨는 이 말로 감회를 대신했다. 1, 2층은 물론 3층과 합창석까지 꽉 메운 청중은 박수와 환호로도 부족했던지 10분 가까이 기립박수를 하기도 했다. 이는 세계적인 음악가와 연주단체가 왔을 때나 볼 수 있는 드문 모습이다.
4년에 걸친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의 장정은 우리나라 교향악 운동의 지형도를 바꿔 놓았다. 제1차 세계대전 전야의 혼돈된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말러의 음악은 현대사회의 불안감을 대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연주하기 어렵고 청중도 까다롭게 느껴 ‘기피음악’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부천 필의 영향으로 국내 음악 팬들 사이에 말러 붐이 일면서 말러 음악은 뉴욕 필, 빈 필 등 외국 일류 오케스트라가 내한해 연주할 때마다 선보이는 애호 레퍼토리가 됐다. 국내 교향악단들도 단발성 연주나마 말러 붐에 가세했다.
“부천 필은 공연하기 전에 단원들이 연주곡의 시대적 배경 등을 자발적으로 연구한다고 들었어요. 연습이 미진한 파트가 추가 연습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연주를 통한 성취감을 생각하면 부천 필 단원들이 부럽습니다.”
얼마 전 만난 국내 다른 교향악단의 한 단원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교향악단의 단원들에게 끼친 정신적 자극. 이는 부천 필이 일궈낸 또 다른 성과였다.
말러 교향곡 연주회는 객석의 관람문화도 바꿔 놓았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말러 교향곡 연주가 있을 때면 청중의 평균 연령이 10년 이상 젊어진다. 중간 휴식시간에 이들이 모여 토론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말러 애호가들은 ‘말러리아’란 모임도 결성해 지휘자 임씨에게 악보 해석상 조언을 할 정도로 학문적 깊이를 이루기도 했다.
그동안 음악 팬들은 어쩌다 무료 티켓이 생기거나 외국의 유명 음악가가 오면 허영심에서 비싼 티켓을 구입해 음악회에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말러의 경우에는 이같이 자기 돈과 시간을 들여 가면서 연구하고 감상하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관람문화가 바뀐 것이다. 모처럼 형성된 이러한 성숙한 관람문화가 앞으로 다른 공연으로까지 확대되길 기대해본다.
유윤종 문화부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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