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역에 선교사들이 들어갈 때만 해도 75명의 아내를 거느린 사람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다니족은 한 울타리안에서 보통 4-5세대 정도가 함께 공동생활을 한다. 울타리 안에는 '호나이'라고 불리는 돔(DOME)모양의 집이 여러채가 있는데 그중 가장 큰 것은 성인 남자들이 거주하며 그 주변의 여러채의 작은 움막에서는 여자들과 나이 어린 자녀들이 함께 지낸다.
작은 움막은 길다란 외양간 같은 것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데 이곳에서는 돼지들을 키우며 부엌으로도 사용된다. 남자아이들도 성년이 되면 남자들의 움막으로 옮기게 된다.
남자들의 움막에는 여자들이 드나 들 수 있지만 여자들의 움막에는 남자들은 출입을 않는다. 큰움막은 반경이 2M 정도로 키가 크지 않은 다니족들은 가운데 기둥을 중심으로 부채살 모양으로 잠을 자므로 열대명이라도 충분히 누울 수가 있다.
벌거벗고 지내는 마당에 무슨 "남녀칠세 부동석"이냐는 것은 우리들의 시각일 뿐이다. 결혼한 남녀도 물론 별거생활을 하게 된다. 이러한 특이한 주거형태는 남녀간의 성관계는 사람의 심신을 나약하게 만든다는 성에 대한 터부에 기인한다고 믿어진다.
임신 4개월 이후와 출산후 3-4년까지는 성관계를 갖지 않는데 이는 여러 자녀를 한꺼번에 가지면 일하는데 지장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니족 사회에서는 애를 기르는 것은 물론 밭일 등은 여자들의 몫이다.
남자들은 밭에서 일하는 여자들을 보호하며 틈틈이 사냥에 나서는 것이 고작일 뿐이다. 이러한 것을 두루 살펴보면 이들한테 섹스는 단순한 종족 보존의 차원이며 결혼도 노동력을 얻기 위한 방편인 것이다.
반면에 이러한 다니족의 성에 대한 터부에도 불구하고 이곳도 사람들의 사회인지라 간통과 강간사건도 없지는 않다고 한다.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들통나면 그 해결방법도 또한 기막히다.
이들은 범죄의 댓가도 역시 돼지를 지불하여 해결을 하게 된다. 간통을 한 남자는 상대방 남편한테 죄의 댓가로 돼지를 지불하면 그 남편은 이 돼지로 또 다른 아내를 맞아 들일 수 있게 되는 기막힌 거래가 성립되는 것이다.
아내를 얻는 것은 노동력을 얻는 것이므로 결혼은 투자의 연속이기도 하다. 이래서 벌거벗고 사는 다니족 한테도 "빈익빈,부익부" 현상은 있는 것 같다. 마을에서 돼지를 많이 보유한 사람은 그마을에 어떤 행사가 있을 때에는 돼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어 그의 권위를 과시한다. 물론 많은 돼지를 내 놓을수록 그의 권위는 상대적으로 커지게 된다.
다니족의 주식은 '이페레'라고 불리는 고구마이며 그 외의 약간의 농작물도 재배한다. 발리엠계곡의 토양은 비교적 비옥한 편이라 먹을 것은 모자라지는 않는 것 같다. 다니족의 마을 행사 때에는 돼지 잡는 것이 하나의 성대한 의식이다.
불행히도 나의 짧은 방문기간 중에는 지켜 볼 기회가 없었지만 아내를 마음대로 살 수 있을 만큼 귀중한 돼지를 먹을 수 있는 기회는 다니족한테 그리 많지 않는 것 같다. 먹는 것이 단순한 다니족한테는 부엌이라고 할만한 시설도 필요하지 않다.
선교사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한 1970년대만 하여도 석기시대의 농기구를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최근에야 삽이나 도끼등의 철기구를 다루게 되었다. 불씨도 나뭇가지를 꺾어서 비벼서 얻으며 이러한 모습은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다.
첫번째 여행에서는 정보도 부족했고 자야푸라의 센타니공항에서 기상악화로 이틀을 허비하는 바람에 발리엠계곡에서의 일정도 예정보다 반으로 줄어들게 되어 만족스럽지 못하였지만 다니족의 실체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에 이번 여행은 매우 의미가 있었던 여행이었다.
그 당시 1993년은 유엔(UN)에서 정한 "원주민의 해"였으며 때마침 대전에서 열렸던 엑스포(EXPO)기간 동안에는 텔레비젼 방송국에서 세계 각국의 풍물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홍수를 이루었다. 그 중 한 방송국에서 다니족의 생활을 방영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필자는 추석연휴를 이용하여 두번째의 여행에 나서게 되었다.
다니족은 외형부터가 우리들의 시각에서 보면 매우 우스꽝스럽게 비쳐질 수 밖에 없었다. 당시에 각 방송국에서 방영한 내용도 이들의 특이한 생활풍습 보다는 벌거벗은 외형에 촛점을 맞추어 코미디 프로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해설자체도 내가 보고 들은 바와는 다른 점도 있었다. 첫 번째 방문에서 이 지역이 생각보다는 안전한 곳이라는 판단도 서고 첫 여행에서 발리엠계곡을 돌아보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한 여행객으로 부터 얻은 "INDONESIAN NEW GUINEA, IRIAN JAYA" 라는 책을 보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도 생겨서 두 번째의 여행에 나서게 되었다.
센타니공항에 도착하니 이번에도 와메나로 가는 비행기가 이틀 동안 뜨지 못하여 공항은 적체된 승객으로 발디딜 틈도 없었지만 지난번 묶었던 호텔주인이 공항관리와의 저녁식사 자리를 주선해주어 와메나행 티켓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와메나항공에 도착하여 'SURAT JALAN'을 제출하고는 이번에는 실라스(SILAS)라는 청년을 가이드로 삼았다. 실라스는 지난번 안내를 한 FREDY 의 친구인데 영어를 나보다 잘해서 많은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다. 발리엠계곡에는 다니족 외에도 다른 부족들이 살고 있다. 그중 얄리족은 와메나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있는데 아직도 위험한 종족으로 여겨진다. 다니족 외에도 라니라고 불리는 부족이 있다. 이들은 지난번 지위카에서 만난 부족과는 다른 부족이었다.
두 번째 여행에서는 라니족인 실라스를 따라 라니족의 마을을 방문하고 아예 그곳에서 하루밤을 지내기로 하였다. 라니족은 다니족과는 달리 체격이 좋아 보였다. 특히 여자들은 가슴이 축 처진 다니족과는 달리 탄력이 있어 보였으며 어디서 구했는지 브래지어를 찬 여자도 보였다. 남자들은 코데카를 보면 쉽게 구분된다. 가늘고 긴 코데카를 착용한 다니족에 비해 라니족은 짧고 굵은 것을 착용하지만 이것은 그 내용물(?)의 크기와는 비례하지 않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다니족은 코데카를 45도 각도로 세워서 그 끝을 실로 허리에 걸치지만 라니족은 굵은 코데카를 사용하며 넓은 천으로 그 끝을 몸에 밀착 시킨다.
지난번 지위카에서 본 춤과 노래는 단순하였지만 라니족의 춤과 노래는 서정적이며 화음을 이룰 줄 알았다. 마을의 젊은 남녀는 두 줄로 나뉘어 앉아서 서로 마주보며 노래를 부르며 손짓을 하여 마음에 맞는 짝을 고르는 "짝짓기 춤"은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미팅과 같은 것이었다.
이날 밤에는 실라스의 집으로 찾아 갔다. 실라스 가족은 반은 옷을 입고, 반은 벌거벗은 차림이었다. 이들은 많이 개화된 편이지만 주거형태는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밤이 되자 움막안에 둘러 앉았다. 실라스는 선교사를 따라 다녀 영어를 배웠지만 그의 동생은 원래의 모습 그대로였다.
내가 이들한테 껌을 하나씩 돌리자 매우 만족하는 얼굴들이었다. 실라스의 동생은 담배를 내게 권하는데 깜짝 놀랄 장면을 보여 주었다. 그는 자기의 코데카를 앞으로 내밀며 툭툭 치니 그 안에서 담배와 라이터가 나오는데 차마 이것을 받아서 피울 수는 없어서 일부러 떨어뜨려 얼른 내 담배로 바꿔 입에 물었다.
실라스 동생은 이어 자기가 피울 담배를 꺼내다 코데카가 그의 몸에서 벗겨졌는데 주위의 식구들이 모두 그 장면을 보고 폭소를 터뜨렸다. 벌거벗고 지내는 처지지만 그래도 그들한테도 남자들의 성기만은 감출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인가 보다. 내친김에 실라스 동생의 벗겨진 코데카 속을 들여다 보니 가운데 막힌부분이 있어서 그 안에 담배나 성냥등을 넣고 다닐 수 있게 만들었다.
이 장면은 내 비디오 카메라에 포착되어 KBS-TV를 통하여 방영 되기도 했었다. 라니족과의 하루밤은 나한테 여러가지의 문제를 안겨 주었다. 이들한테는 화장실이 있을 턱이 없다. 밤에는 그런대로 괜찮지만 낮에는 볼 일 보려면 매우 곤란하여 꼭 나의 자존심만을 지키기 위한 보디가드가 필요하였다.
적도지방의 밤은 비교적 긴 편이다. 어두워진지 한참 되었지만 시계를 보니 9시밖에 안되었다. 대기오염이 없는 지역이라 밤하늘의 별들은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발리엠계곡은 해발 1500미터의 고지대로 밤에는 한기를 느낄정도였지만 이들한테 침구같은 것은 없다. 단지 낮에 입던대로 벗은 사람은 벗은대로 잠잘 때에도 그대로다. 그래도 실라스가족은 어디서 구했는지 편편한 널판지를 가져와 내가 잘 바닥에 깔아 주었다. 모두들 잠을 청하고 있는데 나는 도저히 잠을 쉽게 이룰 수가 없었다.
잠자리가 불편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잠시 이들이 식인종이었다는 사실도 머리속에 스쳐갔지만 이들과 하루를 지내 본 마당에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오늘 하루동안 있었던 일들이 하나 하나씩 떠오르며 남미 원주민의 개화과정을 그린 영화 '미션(MISSION)' 의 장면 속으로 빠져 들면서 잠이 들었다.
김동주/김동주치과의원장 drkimdj@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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