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는 충남 보령의 전통적 유가(儒家)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에게서 한학 수업을 받으며 자랐다. 남로당에서 활동하다가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자리에 할아버지가 있었다.
“책을 집필하며 할아버지 앞에서 무릎 꿇고 앉아 먹 갈고 글 쓰던 옛날을 생각했습니다. 놋재떨이를 두들기던 할아버지의 장죽(長竹) 소리도 새삼 귓전을 맴돌았고요. 당시에는 답답하고 고리타분했었는데, 글 쓰는 사람으로 살게 되면서 할아버지께 감사한 마음이 들더군요.”
천자문에는 중국의 역사를 비롯해 천문 학문 처세 지혜와 정치·행정가의 올바른 몸가짐, 제왕의 도(道), 바람직한 인간형인 군자의 길과 식구나 이웃 사이에 지켜야 할 예의범절까지 두루 담겨 있다는 것.
그는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지거나 소설을 쓰다 막힐 때면 책롱(冊籠)에서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한적(漢籍)을 꺼내 한 장 한 장 넘겨본다고 했다.
“‘삶의 형식은 많이 바뀌었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구나, 내 고민이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는 깨달음을 얻게 돼요.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오늘의 문제가 생생하게 보이는 겁니다.”
지금도 김씨의 귓가에는 할아버지의 이 말씀이 맴돈다고 했다.
“문즉인(文則人)이요 문긔스심(문기서심·文氣書心)이라…. 글은 곧 사람이라. 글은 곧 긔(기)요 글씨는 곧 마음이니, 다다 그 긔를 똑고르게 모으구 그 마음을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넌 사람만이 올바르게 글을 짓구 또 글씨를 쓸 수 있너니….”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