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의 대부분은 현재 흙 속에 그대로 묻혀 있는 상태여서 유물을 본격적으로 출토, 수습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였다. 고분의 보존상태는 양호해 3호기에서는 사람의 발목뼈가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였다.
이번 발굴조사를 맡은 충남발전연구원측은 “이 고분은 한 집안의 가묘(家墓)로 보인다”고 밝혔다. 3기의 무덤에서 환두대도(環頭大刀·손잡이 끝 부분에 둥근 고리모양의 장식이 있는 칼)와 금동신발이 나왔고, 2기에서는 금동칼과 말 재갈이 나와 이들 고분은 남자의 무덤인 것으로 보였다. 나머지 1기의 무덤에선 목걸이와 옥 귀고리가 나와 여자가 묻혔을 것으로 추정됐다.
수촌리 고분군은 백제가 한성(현재의 서울 강남 일대)에 도읍을 정했던 시기 중 후대인 4, 5세기경의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출토 유물 중 시기 구분의 척도가 되는 중국 도자기 계수호(鷄首壺·닭머리 장식이 달린 도자기) 등이 4세기 중국 동진(東晋) 시대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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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발전연구원의 강종원 연구위원은 “금동관이나 신발, 고급 장신구들이 대거 발굴된 것으로 보아 이 고분들은 왕에 버금가는 이 지역 토착 지배계급의 무덤”이라며 “지방에서 중국과 직접 교류해 도자기를 얻었을 리는 없고, 한성에서 이 지역 토착 지배세력에게 하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당시 백제의 정치적 영향력이 현재의 서울, 경기, 충남 천안시 정도에 미쳤을 것이라는 고고학적 통념을 넘어 금강 이북인 충남권까지 확장됐을 것이라는 점을 이번 발굴은 강력하게 입증하고 있다”며 발굴의 의미를 설명했다.
학자들은 지금까지 백제의 웅진(현재의 공주시) 천도 이유가 방위문제 때문이라고 해석해 왔으나 이번 발굴을 계기로 중앙지배층이 이 지역 토착세력과 친한 인연 때문에 옮긴 것이 아닌가 하고 추정하고 있다.
이번 발굴은 농공단지 조성을 위한 사전 토지조사 과정에서 우연하게 이뤄졌다. 2개월간 7, 8명의 발굴팀원들과 함께 작업을 해온 충남발전연구원 이훈 문화재 연구부장은 “지표조사를 하던 중 토기 파편들이 발견됐는데 이들 고분이 무령왕릉에서 가깝다는 점에서 본격 실사에 들어가 큰 성과를 거두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수촌리 고분군과 별도로 3일 공주∼서천 고속도로 개설부지 발굴조사에서 충남 서천군 화양면 추동리 고분군이 발견됐다. 이곳에서는 백제가 한성에서 웅진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 멸망할 때까지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무덤 54기가 발견됐다. 이 고분군에서는 미학적 가치가 뛰어난 꽃 모양의 장신구와 토기들이 출토됐다. 이것들은 당시 백제인들의 생활상을 엿보게 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2, 3세기경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백제는 475년 도읍을 한성에서 웅진으로, 538년 다시 사비(부여)로 옮겼다. 백제는 660년 역사에서 사라졌다.
공주=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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