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시절, 나는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라는 슈바이처 박사의 전기를 읽었다. 랑바레네였던가.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슈바이처 박사가 흑인과 함께 하는 삶에 감동했고, 오래도록 그 기억이 내게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닥터 노먼 베쑨’(실천문학사)의 서문에서 그를 베쑨과 비교하여 평가절하하는 대목을 읽고 당혹스러웠다. 시대적인 좌표 위에서 볼 때, 그는 내가 알던 슈바이처와 조금 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 슈바이처는 중학생 시절 마음에 품었던 흰 수염의 성자(聖者)일 뿐이다.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할 때, ‘성산 장기려’를 소개하는 기쁨이 크다.
이 책은 선량한 품성을 실천하며 살고자 하는 아이에게 권하면 알맞을 책이다. 삶이 훌륭해서 좋은 책, 더군다나 중학교 아이들도 푹 빠져 읽을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쓰여 있다. 특히 의사가 되겠다고 눈을 반짝 빛내는 아이들에게 주면서 ‘재능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고 하면 좋을 책이다. 의사가 되고자 할 때 생각하는 헌신, 나눔의 첫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면 지금처럼 병원 문턱이 높지는 않을 것이다.
1911년에 태어나 1995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권위 있는 외과의사로서, 독실한 종교인으로서, 북한에 아내를 두고 온 뼈아픈 이산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무엇보다도 가난하고 힘없는 행려병자들의 친구로서 살다 간 장기려 선생. 그는 이 땅에서 의료보험을 처음으로 시도했으며, 6·25 전쟁의 와중에 부산 피란지에 천막복음병원을 세워 무료로 환자를 진료했던 참의사였다. 처음에는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것이 흠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덮을 즈음에 생각이 바뀌었다. 크리스천의 봉사, 섬김의 정신을 생활 속에서 실천한 삶을 통해 종교인이 가져야 할 첫 마음을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될 것이니, 믿음이 강한 학생들에게 본받을 인물로 소개해도 좋을 것이다.
‘성산 장기려’를 읽는 중에 만난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두밀리자연학교를 운영하는 채규철 선생의 이야기가 가슴을 쳤다. 그분의 삶을 다룬 ‘사명을 다하기까지는 죽지 않는다’(채규철, 내일을 여는 책)를 함께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최근에 청소년 평전으로 나온 ‘큰의사 노먼 베쑨’(이원준 지음, 이룸)을 읽었다. 안락한 삶을 버리고 전쟁의 한가운데로 달려간 그는 너무나 인간적인, 그리고 진정으로 큰 뜻을 품고 실천한 사람이었다. 사회적 실천과 전공의 매진이라는 두 갈래 길이 영영 다르지 않으며 서로 만나는 지점이 있음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청소년들이 진학하고 싶은 학과 1위가 의대라고 하는 현실에서 책을 통해 만난 ‘사람’이 우리 아이들을 흔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뿌리부터 생각하도록 이끌어주기 바란다. 대단한 위인으로서가 아니라 그 상황에서 흔들리고 충실했던 사람으로서 말이다.
서미선 서울 구룡중 국어교사·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 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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