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단발머리에 가냘픈 몸매, 솔직하고 풍부한 감성이 실린 말들은 작가의 나이를 짐작할 수 없게 했다. 나이 예순에 바라보는 세상이 어떠한지 물었더니 “이제야 남자로부터, 세계로부터, 작업으로부터, 외모로부터, 국적으로부터 자유로워진 해탈을 경험한다. 정말 편안하고 행복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삶이 본래 힘든 것이고, 나이 들면 늙기 마련인데 그걸 받아들이기 힘들 때가 있었어요. 50대 때만 해도 젊어 보이고 싶어 안달을 했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옛 우리네 할머니들이 곰방대를 피워 물면서 여유 있게 늙어가던 모습이 요즘엔 새롭게 다가와요.”
인생의 절반을 이국땅에서 보낸 그는 요즘 독일 노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느긋하고 대범한’ 동양인의 감수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다행으로 여긴다고 했다.
“선진국일수록 자기학대, 우울과 싸우면서 외롭게 노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죠. 생일을 따져 축하하기를 좋아하는 독일 사람들도 나이 예순이 넘으면 생일잔치도 안 합니다. 삶을 관조하면서 순환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동양적 사고방식이 노년의 제게는 큰 힘이 돼요.”
모두 70여점의 신작이 나오는 이번 전시에서는 둥글고 넓적한 얼굴에 통통하고 짧은 다리, 실처럼 작은 눈과 노래하듯 오므리고 다문 입 등 해학과 정으로 가득한 그의 트레이드마크 ‘한국인 얼굴’이 여전하다. 그러나 이전보다 더 밝아지고 따뜻해진 느낌이다.
40여년간 한지를 물들이고 접고 뜯고 붙이는 작업을 해 온 그의 손은 여기저기 긁히고 굳은살이 박여 ‘노동하는 손’다웠다. 요즘도 하루 8시간씩 꼬박 작업한다는 그는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일은 재미없다. 내 앞에 놓여진 새로운 길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늙는 일도 재미있다”고 말했다. 02-734-6111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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