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세계의 배꼽’…살바도르 달리 ‘신비선언’

  • 입력 2003년 12월 10일 18시 33분


1929년 여름, 스페인 북부 피게라스.

살바도르 달리는 자신의 집에서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시인 폴 엘뤼아르와 그의 부인 엘레나를 맞았다. 러시아 태생의 발레리나 엘레나는 ‘초현실주의의 뮤즈’ 갈라로 불리었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운명을 예감한 달리. 그는 돌발적인 웃음과 발작적인 몸짓으로 갈라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다.

그리고 두 달 뒤 파리에서 열린 달리의 개인전. 달리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전시회를 이틀 앞두고 달리와 갈라는 잠적했다. 바르셀로나로 사랑의 도피여행을 떠난 것.

이에 격노한 달리의 부친은 아들과 절연을 선언했다.

20세기의 가장 특이하고 괴이한 화가 달리. ‘프라이팬 없이 떠다니는 달걀 프라이의 환상이 일생 나를 따라다녔다’는 그는 생김새부터 남다르다. 양끝을 말아 올려 바늘처럼 뾰족한 콧수염과 부릅뜬 눈은 그 자체가 파라노이아(편집증적 망상)다.

달리는 무의식과 의식세계의 육체적 장벽을 허물었다. 말(馬)이 여인의 나체로 보인다든가, 하나의 풍경이 여러 개의 얼굴로 비친다든가 하는 기상천외한 다중 이미지를 묘출(描出)했다.

달리는 오만했다. 그는 ‘세계의 배꼽’을 자처했다. 그는 한없이 과장되고 세속적인 이미지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인기 작가로 떠올랐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팔아 거부가 된 몇 안 되는 화가였다.

그는 히틀러를 지지했고(그는 이를 부정했다), 돈에 대해 탐욕을 드러냈다(그는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달러화에 미친 화가’라는 낙인이 찍힌 그는 1939년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추방된다.

그는 이듬해 바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종교적 신비주의와 핵물리학의 주제에 빠져들었다. 1951년 파리를 다시 찾은 달리는 ‘신비 선언’을 출간하고 ‘원자핵 신비주의’를 발표해 관심을 모았다.

그의 예술은 이제 피안(彼岸)과 미시(微視)의 세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전쟁과 냉전(冷戰)의 전도된 세계인식 속에서 그것은 남아있는 유일한 초현실의 영역이기도 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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