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은 ‘바보’ 붐으로 떠들썩하다. ‘바보’를 제목으로 단 책들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드물게 보는 바보’, ‘바보의 순발력’, ‘40세부터 바보가 되는 뇌의 훈련 방법’ 등과 같은 책들이 바로 그것이다.
일본의 ‘바보’에 관한 책은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나뉜다. 첫째, 세상의 ‘바보’를 비난하는 책들이다. 여기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휴대전화를 하는 젊은이들, 경박하게 유행만을 쫓는 여자들, 무턱대고 잘난 척하고 싶어 하는 남자들, 그리고 내용도 없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유명한 평론가들이다. 둘째, 저자나 독자를 ‘바보’편에 세워 놓고 자신 안에 있는 ‘바보’를 상대화시키려는 책들이다. 여기서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일본어에서의 ‘바보’란 때때로 긍정적 의미를 포함한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여자(들)가 남자(들)에게 “바보…”라고 하면 ‘어리광’의 표현이 되며, 남자들이 “나는 말야 바보니까”라고 할 때는 꾀죄죄한 계산 같은 것은 하지 않는 그릇이 큰 남자, 세상의 규격을 깨는 파격적인 대담함을 은근슬쩍 자랑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바보의 벽’은 이런 ‘바보 책’ 중에서도 가장 잘 팔리는 책이다. 지금까지 250만부 이상이 팔렸는데, 아마도 올해 일본의 최대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전 도쿄대 교수이며 해부학자다. 그는 문학과 사상에도 꽤 조예가 깊어, 뛰어난 수필집을 여러 권 저술하기도 했다. 특히 ‘유뇌론(唯腦論)’은 여러 가지 사회현상을 뇌의 네트워크의 연장으로 파악해 주목을 끈 바 있다.
그러나 ‘바보의 벽’은 지금까지의 요로 다케시의 저서와는 그 성향이 다르다. 물론 내용만 본다면 지금까지 그가 말해 온 것을 평이하게 풀어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 독자들로 하여금 왠지 모르게 읽어 보고 싶게 만드는 기묘한 장치가 ‘바보의 벽’ 안에 숨어 있다. 그 장치란 저자가 상대방에게 이야기를 거는 것처럼 씌어졌다는 것, 저자의 전공인 해부학은 물론 철학이나 수학 등의 화제가 호화스러운 향료처럼 여기저기 뿌려져 있어 지적 자극을 준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특히 주목할 점은 그의 주장이 언뜻 보면 상식을 뒤엎는 대담한 주장인 듯하지만 결국은 독자들의 상식 틀을 온전하게 보존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는 전후 일본이 신체의 중요성을 망각했다고 개탄하면서, 신체의 복권을 주장한다. 또 미국과 이라크의 대립을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라는 일신교끼리의 분쟁이라고 주장하며 일본의 다신교 전통을 복권시키려 한다. 그러므로 ‘지적’ 분위기를 지워버린다면, 지금 일본에서 극구 칭찬받고 있는 ‘전통의 복권’이라는 태도가 이 책에서도 어렴풋이나마 보인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이 이토록 많이 팔리는 것도 결국은 아무리 ‘비상식’적 주장이라 할지라도, 일본의 ‘전통’을 수긍하려는 저자의 ‘상식’적 태도에서 유래하는 셈이다.
이연숙 히토쓰바시대 교수·언어학 ys.lee@srv.cc.hit-u.ac.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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