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살아가기 힘들 때마다 1980년대 후반 잡지사 기자 시절, 강원 정선군 고한읍 탄광마을에서 만난 평범한 광부 김장순씨를 떠올린다(산문집 ‘위안’ 중 ‘땅 위의 직업’). 김씨를 따라 지하 700m 막장으로 내려갔던 시인. 갱 바닥은 탄가루와 지하수로 뒤범벅돼 있고, 지열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시인은 김씨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물론 땅 위의 직업을 갖는 거지예. 땅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 직업이 얼마나 좋은지 잘 모릅니더.”
그 후 시인은 그 광부의 말을 잊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세상살이가 고달프고 힘들 때마다 그 광부를 생각합니다. 땅 위의 직업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고 스스로 위안받는 거죠.”
산문집에는 고교 1학년 때 어머니의 시를 부뚜막에서 우연히 본 사연도 담겨 있다. ‘콩나물 얼마, 꽁치 몇 마리 얼마’ 하고 써놓은 가계부를 시작(詩作) 노트 삼았던 그 어머니에게서 시인은 “시의 첫 마음을 배웠다”고 감사한다.
‘고슴도치의 첫 사랑’ 등 60편의 동화가 실린 ‘…사랑의 동화’에서는 진정한 사랑과 인생의 시작을 눈앞에 둔 스무 살 젊은이들에게 아름답게만 보이는 사랑이 실은 얼마나 큰 헌신과 그리움으로 완성되는 것인지를 역설했다.
어린 매화나무에게 “아가야…우리 매화나무들은 살을 에는 겨울바람을 이겨내야만 향기로운 꽃을 피울 수 있단다”라고 말하는 엄마 매화나무는 곧 시인이 아닐까.
“고통스럽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겠다는 말은 밥 먹지 않고 배부르기를 바라는 것과 똑같은 일이지요.”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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