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산문집 펴낸 정호승 시인 "눈물없는 사랑이 어디있으랴"

  • 입력 2003년 12월 17일 18시 21분


시인 정호승씨가 최근 펴낸 동화집과 산문집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그는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 사랑은 다시 시작된다”고 독자들의 등을 다독여준다. -이훈구기자
시인 정호승씨가 최근 펴낸 동화집과 산문집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그는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 사랑은 다시 시작된다”고 독자들의 등을 다독여준다. -이훈구기자
시인 정호승씨(53)가 한 손에는 ‘사랑’, 다른 한 손에는 ‘위안’을 들고 나타났다. 그는 최근 동화집 ‘스무 살을 위한 사랑의 동화’(전 2권·해냄)와 산문집 ‘위안’(열림원)을 연이어 펴냈다.

시인에게 ‘사랑과 위안’은 오래도록 중요한 테마다. 그는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999) 등에서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이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 중)라고 노래해왔다.

시인은 살아가기 힘들 때마다 1980년대 후반 잡지사 기자 시절, 강원 정선군 고한읍 탄광마을에서 만난 평범한 광부 김장순씨를 떠올린다(산문집 ‘위안’ 중 ‘땅 위의 직업’). 김씨를 따라 지하 700m 막장으로 내려갔던 시인. 갱 바닥은 탄가루와 지하수로 뒤범벅돼 있고, 지열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시인은 김씨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물론 땅 위의 직업을 갖는 거지예. 땅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 직업이 얼마나 좋은지 잘 모릅니더.”

그 후 시인은 그 광부의 말을 잊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세상살이가 고달프고 힘들 때마다 그 광부를 생각합니다. 땅 위의 직업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고 스스로 위안받는 거죠.”

산문집에는 고교 1학년 때 어머니의 시를 부뚜막에서 우연히 본 사연도 담겨 있다. ‘콩나물 얼마, 꽁치 몇 마리 얼마’ 하고 써놓은 가계부를 시작(詩作) 노트 삼았던 그 어머니에게서 시인은 “시의 첫 마음을 배웠다”고 감사한다.

‘고슴도치의 첫 사랑’ 등 60편의 동화가 실린 ‘…사랑의 동화’에서는 진정한 사랑과 인생의 시작을 눈앞에 둔 스무 살 젊은이들에게 아름답게만 보이는 사랑이 실은 얼마나 큰 헌신과 그리움으로 완성되는 것인지를 역설했다.

어린 매화나무에게 “아가야…우리 매화나무들은 살을 에는 겨울바람을 이겨내야만 향기로운 꽃을 피울 수 있단다”라고 말하는 엄마 매화나무는 곧 시인이 아닐까.

“고통스럽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겠다는 말은 밥 먹지 않고 배부르기를 바라는 것과 똑같은 일이지요.”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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