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고르기란 원래 쉽지 않은 일이지만 논술 준비용 도서를 솎아 내는 것은 더 어렵다. 읽어서 도움 안 되는 책은 없고 그렇다고 마음이 조급한 수험생들에게 이거다 싶은 책도 없다. 그래서인지 이 책 저 책 추천해 주고도 아직까지 고맙다는 말을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해결책을 찾기 어려울 때는 다른 이들이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이 점에서 외국의 논술고사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은 프랑스 대학수학능력시험 바칼로레아의 철학문제들을 다룬 책이다.
바칼로레아의 논제는 화두(話頭)에 가깝다. “진실에 저항할 수 있는가?”, “예술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운가?”처럼 툭 던지는 한마디가 문제의 전부다. 긴 제시문과 복잡하게 꼬인 논제로 이루어진 우리 논술고사에 비하면 단순하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논술을 지도해 본 사람은 이들 논제가 얼마나 깊은 ‘인문적 내공’으로 만들어졌는지 깨달을 터이다. 예컨대 “예술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운가?”라는 물음에 답하려면 자신의 모든 지적능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논의 방향을 설정하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자기 경험을 끌어들이고 읽은 책을 인용하며 논증 구성과 수사적 장치를 동원하는 긴 과정을 거쳐야만 제대로 된 답안을 작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입시는 교육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바칼로레아같이 ‘정신훈련(mental gymnastic)’을 위한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시험은 준비과정 자체가 지적 성숙으로 가는 여정이다. 반면 ‘변별력 있는 채점’을 위해 정해진 답안으로 논리적 토끼몰이를 해 가는 우리의 입시는 수험생의 상상력을 잠재우는 과정일 뿐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우리 교육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논술시험이 코앞에 닥친 수험생들에게도 이 책은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다. 한 급수 높은 스파링 파트너와 겨뤄 보는 경험은 실전에서 자신감을 키워준다. 바칼로레아 논제로 다져진 학생은 논술 채점 교수들이 해마다 반복하는 “천편일률적인 답안이 많았다”라는 지적을 가볍게 비켜갈 수 있을 것이다.
책머리를 쓴 최영주 박사의 한마디는 가슴에 오래 남는다.
‘프랑스 사람들은 비판정신만 강한 현실 무능력자들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당한다. 하지만 이론 없는 현실처럼 불안하고 위험한 게 또 어디 있을까?’
천박한 실용이 대접받는 우리 현실에 던지고 싶은 말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학교도서관 총괄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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