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서]조이영/"상 받는 것도 사랑입니다"

  • 입력 2003년 12월 19일 18시 24분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 코스모스홀에서는 서울 동성고 총동창회가 주는 ‘자랑스러운 동성인상’ 시상식이 열렸다. 수상자는 현재 병상에 누워 있는 이 학교 출신의 시인 구상씨(84). 아버지 대신 참석해 트로피를 받아든 딸 구자명씨(46·소설가)는 “아버지께 어떻게 수상 승낙을 받을까 엄두가 안 나 차마 말씀을 못 드렸다”고 말문을 열었다.

“신문에서 수상 소식을 본 간호사들에게서 이야기를 들으셨나 봐요. ‘나는 허락한 적 없으니 취소하라’고 하시는데….”

구자명씨는 아버지가 워낙 상 받는 일에 뜻이 없는 데다 동성고를 2년 남짓 다니다 중퇴했기 때문에 상 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고 전했다. 그의 마음을 돌린 것은 나이는 아래이지만 학교로는 선배인 김수환 추기경(81)이었다.

축사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른 김 추기경은 “어제(17일) 이상스럽게 구상 선생이 동성학교에 다녔던 기억이 났다”며 “일본 유학 시절에도 학교는 달랐지만 가톨릭 신자 모임에서 매번 만나곤 했다”고 회고했다.

18일 김 추기경이 총동창회 참석 직전 병실을 찾아가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넸을 때도 시인은 양손을 흔들며 ‘사절한다’는 표시를 먼저 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렸지요. 선생은 세속사를 떠나 사시는 분이니 상을 부담스러워하고 사양하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상을 받는 것도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런 시인이 우리 선배로구나’ 하는 자긍심을 자라나는 어린 학생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면 그것이 올해 선생이 우리에게 주는 성탄 선물이죠.”

추기경의 설득에 결국 시인은 ‘도리 없지’ 하는 눈짓을 보냈다고 한다.

대선배의 ‘성탄 선물’을 받아든 30∼60대의 동창생 150여명은 이날 박수도 치지 못한 채 숙연해졌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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