革-가죽 혁 究-연구할 구
恐-두려울 공 宰-다스릴 재
剋-이길 극 暮-저물 모
‘無識(무식)하면 勇敢(용감)하다’는 말이 있지만 모르면 무섭기도 한 법이다. 죽음이 두려운 까닭은 그 實體(실체)에 대해 아직 속시원하게 究明(구명)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21세기인 지금, 한껏 과학기술을 뽐내고 있지만 어디 인간이 아는 게 얼마나 되는가.
人智(인지)가 아직 깨이지 않았던 先人(선인)들은 ‘통’ 몰랐다. 특히 해 뜨고 비바람 불고 바닷물이 넘치는 따위의 자연현상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었으니 그 恐怖(공포)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신했던 것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을 主宰(주재)하는 이가 바로 ‘하늘’이라는 것이다. 가장 두려워했던 존재가 하늘이었음은 물론이다.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그런데 하늘은 인간과 똑 같은 五感(오감)을 가지고 있다. 인간처럼 보고 웃고 화내고….
그 하늘이 우리 인간도 主宰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자신의 의지, 즉 天命을 아들인 天子를 통해 간접통치의 방식으로 인간을 다스렸는데 잘 다스리면 기분이 좋지만 못된 짓이나 하고 포악한 정치를 일삼으면 하늘도 화가 나서 天命을 거두어들이게 된다. 물론 사전에 경고의 徵兆(징조)를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地震(지진)이니 日蝕(일식) 따위의 天災地變(천재지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機微(기미)를 재빨리 눈치 채고 하늘의 命을 뒤집어 놓는 것이 ‘革命’이다.
짐승의 ‘가죽’을 뜻하는 한자는 몇 개가 있다. 皮(피)는 짐승을 잡아 벗겨낸 직후의 가죽으로 무겁고 끈적거려 입기에 불편했다. 그래서 여러 번 삶고 무두질을 거치면 부드러워지는데 이것이 革이다. 사실 革자는 짐승의 가죽을 나뭇가지에 펼쳐 말리는 모습에서 따온 글자다.
革이 되면 종전 皮에서 지니고 있던 특징은 완전히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가죽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래서 革은 ‘면모를 완전히 바꾸다’는 뜻도 가지게 되었다. 革新(혁신), 改革(개혁) 등이 그렇다.
또한 革은 周易(주역)에 보이는 卦(괘)의 이름이기도 하다. 연못 속에 불덩이가 앉아있는 형상인데 물과 불은 서로 相剋(상극), 무엇인가 뒤집어 놓아야 할 괘가 革인 것이다. 그렇다면 革命은 ‘天命을 완전히 뜯어 고친다’는 뜻이 아닌가.
歲暮(세모)에 웬 느닷없는 ‘革命’논쟁인가. 차분히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이해도 부족할 판에 공허한 정치싸움이나 벌이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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