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오명철/'버리고 떠나기'

  • 입력 2003년 12월 23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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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고승들의 입적 소식이 유난히 많이 전해졌다. 3월 말 서암 스님의 입적을 시작으로 9월에 고송 스님, 11월에 청화 정대 덕암 스님, 12월에 덕명 월하 서옹 스님이 차례로 열반에 들었다. 법장 조계종 총무원장은 선승들의 잇단 열반 소식에 “제가 복이 없는 탓”이라며 황망해 했고, 와병 중인 스님을 합쳐 “올 한 해 모두 열 분의 고승이 입적하신다더라”는 얘기도 오간다.

광복 이후 한국 불교를 이끌어 온 원로 스님들이 차례로 ‘이 세상’(이승)의 옷을 바꿔 입고 ‘저 세상’(저승)으로 떠나는 것을 보니 법맥(法脈)의 한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실감한다. 불현듯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면서, 세상이 얼마나 더 험악해지려고 덕이 높은 스님들이 서둘러 저 세상으로 가시는가 하는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

예로부터 고승들은 깨우치는 순간의 법열을 담은 오도송(悟道頌)과 이승을 떠나며 평생의 구도행각을 정리하는 임종게(臨終偈)를 남겨 왔다. 특히 임종게는 고승의 ‘선적(禪的) 유언’이라는 점에서 선사들의 삶을 압축하는 에센스다. 경봉 스님은 “야반(夜半) 삼경(三更)에 문빗장을 잠그라”고 했고, 성철 스님은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고 했다. 효봉 스님은 “내가 말한 모든 법은 그거 다 군더더기”라고 했고, 서암 스님은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라고 했다. 가히 대선사들의 경지다.

임종게는 선사들이 생시에 자신의 깨달음을 한시(漢詩)로 적어 두거나 평소 가르침을 상좌들이 정리해 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다 보니 때로 임종게가 뒤바뀌곤 해 주위를 민망하게 한 적도 있다. 최근에도 은사 스님에 대한 상좌들의 정성이 지나쳐 두 번이나 이런 사례가 있었다.

불가에서는 옛 중국 선사들의 다양한 입적 모습이 전설처럼 전해진다. 앉거나 서서 입적한 것은 보통이고 물구나무를 서서 거꾸로 입적한 선사도 있다. 뜰 앞을 거닐다 “오늘 가야겠다”고 독백을 하며 몇 발을 내디딘 뒤 곧바로 입적한 선사가 있고, 스스로 장작더미에 올라가 소신공양(燒身供養)한 선사도 있다. 국내에서는 주위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돌을 안고 강물로 뛰어든 스님과 걸망에 돌을 넣고 제주 바다로 뛰어든 스님의 얘기가 전해진다.

세간에 서옹 스님의 좌탈입망(坐脫立亡)이 화제다. 비스듬히 벽에 기대 잠자듯 결가부좌의 자세로 적멸의 세계로 빠져든 고승의 법구(法軀)에서 그의 치열한 구도행각을 감지한다. 하지만 사진을 보며 왠지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성철 스님 다비식 때 사리의 수를 세다 종단의 어른들에게서 “사리장사를 하려고 드는 것이냐”는 호통을 들었던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좌탈입망 사진은 훗날 기록과 사료로 소리 없이 전해지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 석가모니는 누운 채로 돌아가셨다.

최근 입적한 선사들의 사리 수로 그분들의 법력(法力)을 비교하는 얘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한국 근대 불교의 거봉인 만공 스님과 경봉 스님도 사리를 수습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견성과 해탈은 물론 사후의 추앙으로부터도 진정 자유로워지고 싶었기 때문일 터이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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