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를 장식한 아티스트의 명단이 아니다. 한 음반매장에서 사인회를 가진 명연주가들의 면면이다. 화제의 공간은 8월 서울 압구정동에 문을 연 레코드숍 ‘풍월당(風月堂)’. 30평에 불과한 넓지 않은 공간에 왜 세계적인 클래식 대가들이 출현한 것일까.
“‘풍월당’은 서울에서 난다 뛴다 하는 클래식 고수들이 모이는 집결지입니다. 팝 가요 음반은 전혀 없지만 음반전문지와 인터넷 음악전문사이트에서 필력을 날리는 클래식 전문가들이 이곳에 옵니다. 이들의 입소문 한마디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기에, 이곳에서 팬 사인회를 열자고 제안했습니다.” 백건우씨와 흐보로스토프스키씨의 음반을 낸 유니버설 뮤직 클래식부 송현수 부장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음악계의 고수들이 이곳에 모이는 이유는? 이 공간을 만든 이들이 바로 고수이기 때문. 정신과 의사이면서도 오페라 전문가로 더 유명한 박종호씨(43·사진)가 이곳의 사장. ‘압구정동 한복판, 그것도 건물 2층에, 게다가 클래식만 파는 음반점이 장사가 되겠느냐’는 주위의 염려에도 그는 모험을 강행했다. 운영하던 병원은 올해 초 아예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그리고 부산의 음반점인 국도레코드에서 ‘전설적인 감식안’으로 이름을 날려온 ‘음반 큐레이터’ 최성은 실장(29)을 전격 스카우트했다.
“신보가 들어올 때마다 회원들에게 상세 정보를 e메일로 보내줍니다. 다루는 음반의 종류 수에 있어서도 도쿄나 런던의 어떤 전문매장 못지않죠.” 음반점에서 만난 한 ‘인터넷 클래식 논객’은 이렇게 말했다.
박 사장은 “그동안 국내 음반점들이 대형화됐지만 정작 큰 공간에 어울리는 ‘희귀음반’ 산책에는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외국 여행 때마다 음반점을 들리면서 아쉬움은 더욱 커졌고, 결국 직접 음반점을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문의’에서 ‘사장’으로 변신한 그는 “당초 예상보다 장사가 잘돼 다행”이라며 “앞으로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편한 놀이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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