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개가 혼자서 제 새끼들을 낳고 있다
어미가 있어 가르친 것도 아니고
사람의 손이 돕지도 않는데
새끼를 낳고 태를 끊고 젖을 물린다
찬 바람 드는 곳을 제 몸으로 막고
오직 몸의 온기로 만드는 따뜻한 요람에서
제 피를 녹여 새끼를 만들고
제 살을 녹여 젖을 물리는 모성 앞에
나는 한참이나 눈물겨워진다
모성은 신성(神性) 이전에 만들어졌을 것이니
하찮은 것들이라 할지라도, 저 모성 앞에
오늘은 성탄절, 동방박사가 찾아와 축복해 주실 것이다
몸 구석구석 핥아주고
배내똥도 핥아주고
핥고 핥아서 제 생명의 등불 밝히는
저 모성 앞에서
- 시집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문학사상사) 중에서
정 시인님, 마당으로 출근하신다는 이야기 전해 들었습니다만 오늘 출근은 정말 대단하셨군요. 마당 한쪽 눈도 못 뜬 채 고물고물한 새끼강아지들, 때마침 눈 내리는 성탄절 아침에 오셨군요. ‘히, 지들이 무슨 아기예수라고.’ 핀잔주려다 보니 그게 아니로군요.
‘제 피를 녹여 새끼를 만들고/ 제 살을 녹여 젖을 물리는 모성’을 보니 ‘미물(微物)’이란 말이 얼마나 인간 위주의 편견인 줄 새삼 깨닫네요. 마구간에서 나신 아기 예수님처럼 가장 낮은 것들의 출생조차 성탄(聖誕)이로군요.
올 성탄절엔 함박눈 펄펄 내리는 마당을 맨발로 내달려도 발 시리지 않겠어요.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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