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팎은 온통 아수라장이지만 주5일 근무제 확산을 계기로 삶의 질적 향상을 꾀하는 ‘웰빙족’도 늘어난 한해였다.
‘웰빙’의 참뜻인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상태’는 동아일보 위크엔드 독자들이 1년 내내 추구했던 목표였을 것 같다. 위크엔드에서는 유기농 농산물을 먹고,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며, 천연 화장품을 골라 쓰는 것만이 과연 올바른 ‘웰빙’인지 검증해 보기도 했다.
몇 해 전 밥상 위에서부터 시작된 ‘웰빙’ 트렌드는 올해를 기점으로 의류와 주거로도 번졌다. 한국패션협회가 최근 발표한 ‘2003년 패션시장 분석’ 결과, 남성복과 여성복 정장류는 지난해보다 매출이 줄어든 반면 스포츠 및 아웃도어 웨어는 39.3%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협회측은 “피트니스, 요가, 여행 등 여가 활동에 사용되는 의복이 일상복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가전제품 시장에서도 같은 트렌드를 읽을 수 있었다.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일반 가전제품의 판매가 지난해보다 약 30% 줄어들었지만 살균 효과를 내는 세탁기, 공기 청정기 등 생활환경의 질을 높이는 가전기기는 꾸준히 팔렸다.
유럽의 대형 광고대행사 ‘유로 RSCG 월드와이드’가 전망한 2004년 10대 트렌드 가운데에는 ‘웰빙’이 단기적인 트렌드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짐작케 하는 두 가지 트렌드가 있다.
하나는 패션과 미용에 관심이 많은 도시 남성, ‘메트로 섹슈얼’을 위한 스파 시설, 건강을 위한 각종 소품 산업이 커진다는 전망. 또 하나는 성인은 물론 어린이, 애완동물의 비만을 막기 위한 저칼로리 식품이나 운동 제품이 호황을 이룰 것이라는 전망이다.
‘웰빙’의 궁극적인 목표는 건강뿐만이 아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바탕으로 성공, 가족의 행복까지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치에 근접한 1.17명. 그만큼 아이가 귀해졌지만 여전히 아이는 가족의 중심이고, 가족의 안녕은 ‘웰빙’의 필수조건이다.
자녀수가 적어질수록 자녀에게 쏟는 애정과 기대가 높아진다. 이런 부모 밑에서 ‘럭셔리 키드’가 태어난다. 명품 브랜드인 페라가모, 버버리, 크리스티앙 디오르와 디자이너 앙드레 김 등이 고가의 아동복 라인을 출시하게 된 것도 이러한 흐름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각각 40대와 30대 후반에 정년퇴임한다는 뜻의 ‘사오정’ ‘삼팔선’ 등 신조어는 노동의 데드라인이 앞당겨지는 사회상을 반영한다. 이에 따라 30대 이전에 자기 사업을 벌여 조기에 성공하려는 조바심을 보이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당신은 올 한해 ‘웰빙’했는가.
격동의 2003년, 각기 다른 방법과 결과로 ‘웰빙’을 추구한 사람들을 만나 성공기를 들었다. 가족의 행복, 사업 성공, 건강 등 ‘웰빙’의 세 가지 큰 화두를 성취한 이들이었다.》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건강-뉴욕마라톤 3시간대 주파 이의호-장경란씨 부부
지난달 2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 뉴욕마라톤 대회에 함께 출전한 이의호(56·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장경란씨(51) 부부가 나란히 결승선에 들어왔다. 기록은 3시간58분07초. 이 대회에 한국에서 출전한 부부가 참가해 동시에 골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랫동안 꿈꿔온 국제 마라톤대회에서, 그것도 둘이 함께 3시간대에 완주한 것은 올해 일궈낸 가장 큰 성공이었다. 뿐만 아니다. 마라톤 덕분에 지병을 극복하고 건강을 되찾는 ‘덤’이 뒤따랐다. 올해는 이들 부부에게 그 어느 때보다 빛나는 한 해로 기록될 참이다.
21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만난 두 부부는 군살 없는 몸매에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실제보다 다섯 살 이상 젊어보였다. 하지만 이런 활기찬 모습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어려서부터 허약하고 내성적이었어요. 천식을 앓아왔고 십이지장 궤양도 있었죠. 뭔가 운동을 해서 건강을 찾고 싶었는데 마라톤이 왠지 만만해 보였죠.”
4년 전 이렇게 마라톤을 시작한 남편 이씨는 갖은 시행착오 끝에 달리기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함께 달리자”는 그의 설득으로 아내 장씨도 이듬해 5월부터 매일 아침 운동화 끈을 졸라매게 됐다. 이들의 연습량은 평일 10∼13km, 주말 20∼25km.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소요산이나 집근처 공설운동장에 나가 달린다.
처음 마라톤을 시작할 때는 무척 망설이기도 했다. 특히 남편과 같은 동두천시 직원으로 맞벌이를 해야 하는 장씨는 ‘금쪽같은’ 새벽시간을 운동에 할애하느라 생활에 쫓기는 것 같아 남편의 권유를 몇 번이나 뿌리쳤다. 그러나 일단 마라톤을 하면서 이씨의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지자 중단할 수가 없었다. 지난해 십이지장궤양 완치 판정을 받은 데 이어 어려서부터 앓던 천식이 최근 완치단계에 이른 것.
“천식 때문에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지금은 어쩌다 건강체크를 위해 병원을 찾는 정도죠. 주치의도 놀라요. 천식 환자가 풀코스 완주라니….”(이씨)
장씨도 심장이 약해 사소한 일에도 자주 놀랐고 만성 구내염까지 있었지만 요즘엔 “인생을 살면서 최고의 컨디션을 맛보고 있다”고 거들었다.
마라톤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이들은 올해에만 하프코스 11회, 풀코스 4회를 완주했다. 장씨는 9월 ‘동아일보 백제 큰길 마스터스 대회’에서 풀코스 50대 여성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지난달 충남 천안에서 열린 나이키 동호인 마라톤 대회에서는 전국 부부마라톤 클럽회원 100여명과 하프코스도 완주했다.
“마라톤은 특히 중년부부에게 아주 좋은 것 같아요. 자식들이 떠나면 남는 것은 결국 부부뿐이잖아요. 극한의 체험을 함께 나눈 사이니 사소한 일로는 싸우지도 않게 돼요.”(장씨)
장성한 세 아들은 모두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어 현재 부부 둘이서만 생활하고 있다. 젊어서는 집안일을 돕지 못했다는 이씨는 첫 마라톤 제자인 아내를 위해 요즘은 마라톤 복장이나 기구, 건강 상태까지 꼼꼼히 챙기는 ‘매니저’ 노릇도 하고 있다.
전국 부부마라톤클럽에도 가입해 활발히 활동하는 이들 부부의 팀 이름은 ‘호접란’. 두 사람의 이름 마지막 글자를 양쪽에 달고 ‘접(접)’자로 연결한 이름이다.
계미년이 저물어가는 즈음, 이들은 부부이자 직장동료, 평생친구로서 몸과 마음을 ‘접’하며 달리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내년도 올해만 하여라’고 빌면서….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일-탤런트서 사업가로 이주희씨의 변신
올해는 이주희씨(29)에게는 생애 최고로 바쁜 한 해였다. 그냥 바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사업에 대한 도전과 성취로 가득 찬 한 해였다.
그는 4월부터 TV 홈쇼핑을 통해 이스라엘 사해 소금 화장품 ‘팔로마’를 판매하는 ‘사업가’. 그러나 아직은 그런 호칭이 어색하기만 하다.
전직 탤런트. 중학교 2학년 때 화장품 광고모델로 데뷔, ‘깨끗해요’라는 카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어른 연기자가 되고서도 ‘아역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인기를 위해 ‘극단적 변신’을 시도할 용기도 없었다.
나이는 먹어 가는데…. 방황하던 중 사업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여행 중 직접 써봤던 사해 소금 화장품을 잡아보자고 마음먹은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별로 대담한 성격은 아니었는데 웬일인지 이 일에서만큼은 용기가 났어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죠. 곱게 자란 젊은 여자가 갑자기 사업한다는 게 어디 그렇게 간단한가요.”
예전에는 남에게 공주처럼 보호만 받다가 이제는 모든 것을 직접 해결해야 하니 스트레스로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어차피 발을 들여놓은 이상 여기서 승부를 봐야 했다. 주변 지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화장품을 알리고 일반에도 홍보 마케팅에 주력했다.
그 결과 ‘팔로마’는 두 번째 방송 때부터 27만9000원짜리 세트가 1400개 판매되는 좋은 성적을 보였다. 올 하반기 CJ홈쇼핑의 화장품 부문 매출 1위를 기록했고 현재까지 총 6만5000개가 팔렸다. 전쟁, 불황 등 악재를 고려하면 그 자신도 믿기 힘든 성과다.
그는 “연기자로서 기로에 놓였던 20대 중반이 기억하기 싫은 힘든 기간이었다면 20대 막바지인 지금 신나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3년, 도전이 준 대가였다.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가족-인공수정…유산…임신중독…5년만에 행복찾은 서영주씨
온승현. 3.66kg의 건강한 사내 아기가 세상에 나오면서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집안에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가족들끼리 더욱 아껴주며, 직장 일에서도 자신감이 되살아났다. 결혼 후 5년 동안 간절히 바라던 아기를, LG패션 홍보팀 서영주 과장(33)은 올해 4월 얻었다.
“업무의 특성상 밤늦게까지 야근하는 일이 많았어요. 처음엔 일이 많아서 아이가 잘 생기지 않는 줄 알았죠.”
그래서 임신에 좋다는 음식이란 음식, 약이란 약은 다 찾아 먹어봤지만 효험이 없었다. 직장생활 중 없는 시간을 쪼개가며, 몸에 무리가 간다는 인공 수정도 시도했다. 간신히 3번 만에 성공했지만 지난해 큰 패션쇼를 준비하던 와중에 뱃속의 아이를 잃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이었다.
충격에서 벗어나 ‘이제 시험관 아기라도 갖겠다’고 마음을 다잡을 무렵 자연임신을 했다.
“임신 후에도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입덧이 심하고 하혈, 임신성 당뇨, 임신중독증까지…. 그래도 아기를 볼 수 있다는 희망 하나만 갖고 끝까지 버텼죠.”
게다가 아기는 뱃속에서 거꾸로 들어앉아 있었다. 예정보다 이른 8개월10일 만에 제왕절개 수술로 간신히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가슴을 졸이는 임신기간이었다.
이렇게 엄마 고생한 것을 갚아주려고 한 것일까. 승현이는 태어난 지 20일 만에 TV 조명 빛도 봤다. 출산 후 한 산후조리원에 있었는데, 그때 국정홍보처 TV광고를 찍는 촬영팀이 찾아와 ‘아기 얼짱’으로 캐스팅됐다. 생후 20일 만에 찍은 ‘데뷔작’ 출연료는 70만원.
“요즘엔 DINK(아기를 갖지 않는 맞벌이 부부)족도 확산되지만 아기가 없어 고민하는 직장여성들도 많은 것 같아요. 새해에는 아기를 원하는 모든 분들에게 저와 같은 행운이 있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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