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낯설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병원에 익숙해진 뒤에도 엄마 눈치를 보지 않고 스스로의 생각을 표현하는 아이는 그리 많지 않다.
최근 비디오로 출시된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는 잠수부에게 잡혀간 아이 물고기 니모와 그를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난 아빠 물고기 말린의 모험담이다. 말린은 니모를 늘 안쓰러워하고 품안에 보호하려고 하는 아빠다. 학교에 가고 싶어 하는 니모에게 “몇 년 더 있다 가면 안 되느냐”고 성화이며, 니모가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지, 행여 위험한 곳에 가지는 않을지 늘 걱정이다. 그는 니모를 ‘자신감만 앞섰지 아무 것도 못하는’ 아이로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며 나는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기 전에 엄마 얼굴부터 쳐다보는 진료실의 아이들이 생각났다. 아이들은 엄마와 내 생각이 다르면 안 되니까 말하기 전에 엄마 생각을 확인하거나 아예 엄마가 이야기하는 게 낫다고 느끼는 것 같다.
많은 경우 그것은 아이가 자기 나름의 표현과 주장을 했을 때 비난받거나 무시당하는 등의 부정적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중의 일부는 니모의 아빠처럼 부모 자신이, 아이가 커가면서 다른 생각과 행동을 드러내고 시도하는 것을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가 부모와 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게 부모의 잘못만은 아니다. 사실 너무 오랫동안 우리는 그저 낙오되지 않아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개성적인 것’ ‘튀는 것’ ‘대다수의 표준과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하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세상의 패러다임이 바뀌어도 그렇게 전승되어 온 두려움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말린은 니모를 찾아가는 길에서 만난 친구 도리에게 “나는 니모에게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한다. 그러자 도리는 “그건 말이 안 돼. 그럼 아무 일도 안 일어나. 아들에겐 아들의 인생이 있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이 영화의 핵심이다.
말린이 니모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깨닫는 것은, 니모에게 일어나는 일을 자신이 모두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과 그가 걱정하는 것만큼 니모가 어리지도 어리석지도 약하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말린이 스스로 모험을 겪고 위기를 헤쳐 나가며 얻은 것은 바로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스스로에게 낯선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면서, 니모에 대한 믿음 또한 조금씩 커진다. 결국 니모에 대한 불안은, 말린 자신의 불안이었던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니모는 새로운 사회에서 얻은 지혜와 지식을 이용해 갇혀 있던 어항에서 탈출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보호와 돌봄을 받아야 하지만, 그것이 지나칠 때는 오히려 아이의 성장을 막는다. 바닷가에 알을 낳아 놓으면 혼자 바다로 돌아오는 아기 거북들처럼, 때로는 멀리서 아이를 지켜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어떨 때는 아빠 거북의 말대로 “자기들이 컸다고 생각할 때 다 큰 거야”라고 믿어 주는 마음도 있어야 한다.
니모가 변기 속으로 빠지자 말린은 니모가 헤어나올 수 없는 하수구에 빠져버렸다는 생각에 아찔해졌지만, 결국 그 길은 바다와 잇닿아 있었다. 결국 아이가 어항이 아닌 바다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운명일 바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헤엄쳐 나갈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유희정 정신과 전문의 경상대병원 hjyoomd@unitel.co.kr
▼곁들여 볼 비디오/DVD ▼
○ 빌리 엘리어트
1980년대 탄광노조의 파업이 한창이던 영국 북부의 탄광촌. 11세 소년 빌리는 탄광노동자인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발레에 푹 빠지고 만다. 빌리를 용납할 수 없던 아버지는 아들이 온 몸으로 표현하는 춤 앞에서 그의 열망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성인이 된 빌리가 날아오르듯 무대 위에 등장하는 장면은 가장 아름다운 엔딩 장면 가운데 하나다. 감독 스티븐 달드리.
○ 슈팅 라이크 베컴
런던에 사는 인도 소녀 제스의 꿈은 축구선수가 되는 것. 영국에 살면서 인도인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부모의 눈에 그런 제스가 곱게 보일 리 없다. 반면 역시 축구 선수를 지망하는 영국 소녀 줄스의 부모는 딸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다. 콤플렉스와 불안이 개입되지 않은 ‘차이’와 ‘다름’에 대한 인정을 배울 수 있는 영화. 감독은 인도계 영국여성 거린더 차다.
○ 로드 투 퍼디션
아버지와 아들의 애증관계를 중심에 둔 비장한 갱스터 영화. 30년대 대공황기의 미국 시카고. 마피아 조직의 이인자인 설리반의 아들은 늘 아버지의 직업이 궁금해 아버지의 차에 숨어들고, 그의 철없는 호기심은 피를 부른다. 톰 행크스, 폴 뉴먼의 관록 있는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 감독 샘 맨디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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