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있는 가요도 제가 부르면 트로트가 돼 버려요. 소위 ‘뽕짝’ 분위기가 나는 거죠. 가요나 팝송은 뒷부분에 포인트를 줘야 하는데 한국의 전통 음악은 맨 앞에 힘을 주거든요.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아… 이렇게 말이에요.”
가수 데뷔를 준비 중인 서울대 국악과 4학년 이동희씨(23). 그는 커다란 눈으로 기자를 빤히 쳐다보다 갑자기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의 한 구절을 불러 젖혔다. 그러더니 “가요를 부를 때 국악의 색깔을 많이 뺐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꺾인’ 소리가 나오면 스스로가 미워진다”며 애교스럽게 가슴을 친다.
이씨는 드라마 ‘대장금’의 주제가를 불러 관심을 끌고 있는 바로 그 인물. 작년에는 같은 과 여자친구 2명과 가야금 장구 대금을 들고 6개월간 세계 배낭여행을 하며 길거리공연을 한 당찬 여성이기도 하다. 생활한복과 댕기로 곱게 차리고 외국인들 앞에서 펼친 이들의 국악 공연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된다.
이렇게 국악에 빠져 살던 이씨가 요즘 하루 종일 R&B 창법을 연습하는 이유는 발라드풍의 음반 취입을 코앞에 두고 있기 때문. 지난주부터는 작업을 위해 서울 대치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합숙 훈련에 들어갔다. 가수 조성모의 ‘To Heaven’을 작곡한 이경섭씨와 드라마 ‘가을동화’ 배경음악을 작곡한 정진수씨 등이 음악을 맡을 예정이다.
“가수 데뷔 제안을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가요가 익숙지 않아서 노래방 가는 것도 싫어했거든요. 게다가 제 나이는 연예계에서는 사실상 ‘중년’이래요. 그렇지만 대중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야 국악도 알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왕 시작했으니 보아처럼 한 세대를 대표하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국악으로 얻은 인지도로 결국 ‘스타’ 연예인이 되려는 것은 아니냐고 물어봤다. 국악을 살리려다 오히려 대중문화에 휩쓸려 국악의 정체성을 놓치는 것은 아닐까.
“국악 자체는 현대인에게 그저 신기하고 어색한 소리일 뿐이죠. 왠지 닭살 돋고 지루한 음악요. 그런 인식을 버리고 한국음악에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국악과 현대음악의 비중이 3 대 7인 1집 음반이 성공하면 다음에는 4 대 6, 5 대 5로 국악 비중을 높일 거예요.”
이씨는 태국에서 거리 공연을 할 때 느낀 점을 예로 들었다. 멀리서 생뚱하게 쳐다보기만 하던 태국인들이 자국 노래의 멜로디를 연주하자 웃으며 가까이 다가와 노래를 따라하더라는 것. ‘국악이니까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보다 ‘노래 괜찮네’ ‘듣기 좋네’라는 느낌이 국악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가야금과 거문고, 장구, 민요 가창, 한국무용 등에 두루 능한 이 가수 지망생은 최근 ‘작가’로도 데뷔했다. 작년 한국의 음악을 알리러 떠났던 세계여행의 과정을 담은 ‘아주 특별한 소리여행’이라는 책을 낸 것. 연속 54시간의 버스 여행, 대합실에서의 노숙, 비 오는 날의 거리 공연 등 추억을 담아냈다.
“저는 한 가지 일을 시작하면 목숨 걸고 하는 스타일이에요. 꿈도 클수록 좋다고 생각하고요. 10대 때부터 꿈꿔 왔던 세계 여행을 20대에 해냈잖아요. 20대에 꿈을 꾸면 30대에는 또 다른 멋진 일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국민가수…. 쑥스럽지만 지금은 그 꿈을 위해 이렇게 뛰는 거죠.”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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