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를 둘러보면 우선 다양한 건축양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만큼 역사가 오래되었다지만 고딕, 로마네스크, 바로크, 르네상스양식에서 네오클래식과 아르누보(Art-Nouveau 영어로는 new art) 양식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변천에 따라 다양한 건물들이 도시전체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마치 도시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처럼 느껴진다.
프라하에서는 블타바강(몰다우강) 건너의 언덕에 위치한 프라하왕궁과 천문시계로 유명한 구시청사, 틴교회, 종교개혁가 얀후스의 기념비 등이 있는 구시가광장,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와서 프라하 시민들의 자유를 위한 저항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던 바츨라프광장이 있다. 이들은 프라하 관광 트로이카로 들 수 있다.
왕궁의 언덕 위에 세워진 프라하성은 그 역사가 9세기까지 거슬러 오르지만 프라하성의 중심인 성비투스 성당은 1344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를 4세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그 후에도 증축과 개축이 계속 진행됐으며,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은 1929년이라 한다. 부분적으로는 로마네스크양식, 바로크양식도 보이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고딕양식의 건물이다.
성비투스 성당을 감싸고 있는 왕궁건물의 정문에 접한 마당에서 벌어지는 위병교대식은 사회주의국가 특유의 절도 있는 동작으로 영국의 버킹검궁의 위병교대식과 대조를 보인다.
프라하성을 내려오면 블타바강을 건너 구시가지로 연결되는 카를다리가 나온다. 카를다리 역시 카를 4세에 의해 완성되었는데 원래 있었던 다리가 홍수에 유실되고 나서 재건한 것이라 그런지 650년이 지난 지금도 끄덕없이 사용되고 있다. 길이 약 520미터의 카를다리 옆으로 서 있는 조각들은 18-19세기에 들면서 세워진 것이라 한다. 카를다리 입구에 있는 우아한 바로크양식의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모짜르트의 할렐루야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프라하에서는 오페라극장 외에도 크고 작은 교회에서 항상 음악회가 열려서 음악애호가들의 지친 다리에 힘이 솟게 만든다.
카를다리를 건너 구시가지의 중심인 구시가광장은 프라하 시민들과 애환을 함께 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교회의 부패에 저항하다 화형 당한 종교개혁가 얀후스의 순교 5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얀후스 기념비가 있으며 바로크양식의 성니콜라스성당, 뾰족한 첨탑 두개가 하늘로 치솟은 틴교회, 그리고 천문시계로 유명한 구시청사가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구시청사의 시계탑에 있는 천문시계는 매시 정각이 되면 시계 위의 조그만 문이 열리며 예수님의 12제자가 차례대로 등장하고 마지막에는 닭 울음소리를 끝으로 시보를 알려준다.
고딕식 첨탑의 위용을 자랑하는 틴교회 뒤로 들어가면 1783년 모짜르트가 그의 오페라 ‘돈죠바니’를 직접 지휘하여 초연한 네오클래식양식의 시민극장이 있다. 프라하가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던 시대에 모짜르트는 비엔나와 함께 프라하에서 많은 연주활동을 하여 지금도 프라하 사람들이 모짜르트에 갖는 애정은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다.
프라하의 역사를 통하여 프라하성으로 통하는 관문의 역할을 해온 우중충한 화약탑 옆으로는 산뜻한 아르누보양식의 시민회관이 돋보인다. 시민회관에는 체코가 자랑하는 음악가 스메타나를 기념하는 스메타나필하모니의 활동무대인 스메타나홀이 있다.
체코가 배출한 당대의 유명한 음악가로는 드보르작이 있다. 드보르작이 주로 외국에서 활동한 반면 스메타나는 프라하를 중심으로 활약을 하였기에 프라하에서는 스메타나를 기리는 곳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구시가광장에서 빠져 나와 국립박물관으로 이어지는 대로가 프라하 근대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한 바츨라프광장이다.
광장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가운데 화단을 길게 두고 양 옆으로 도로가 나있는 곳인데 ‘프라하의 봄’으로 불리는 1968년 체코의 두브체크 장군에 의한 소련 군사력에 저항운동에 이어 1969년 얀팔라치 청년이 분신한 사건의 현장이다. 바츨라프광장 정면으로 국립박물관이 있으며 그 앞에는 바츨라프왕의 기마상이 서 있다. 국립박물관의 왼쪽으로는 스메타나를 기념하는 네오르네상스양식의 스메타나극장이 있다.
김동주/김동주치과의원장 drkimdj@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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