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 과정에서 비교적 세밀하게 검토된 작품은 ‘살인을 꿈꾸는 아이’(박서진), ‘독수리와 놀다’(이춘섭)라는 두 편이다. ‘살인을 꿈꾸는 아이’는 아동 성폭행이라는 모티프를 중심으로 인간 의식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폭력과 상처의 문제를 다룬다. 그러나 이 문제적인 모티프를 근간으로 하여 전개하고 있는 이야기의 내용에 어떤 개연성을 부여하는 힘이 약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실제로 이복 남매의 만남을 우연한 계기로 설정하고 있다든지, 폭력의 반복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점 등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특히 이야기 서술의 시점을 이동하면서도 그 효과를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독수리와 놀다’는 일상 속에서 억압된 욕망과 좌절을 독수리의 표상을 중심으로 엮어간다. 그러나 그 욕망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형상화하지 못하고 있으며, 삽화의 결합에 있어서도 긴장을 결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행동과 의식을 통한 인물의 성격 구성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밖에 ‘고양이’(이봉준) 등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하였지만, 앞의 두 편과 유사한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을 뿐이다.
당선작을 골라야 하는 최종 단계에서 심사위원들은 2004년도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서 당선작을 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올해부터 제도를 개선하여 상금을 올리고 ‘동아인산문학상’까지 겸하도록 한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작을 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수많은 응모자들에게는 새로운 도전을 위한 치열한 노력을 당부하고 싶다. 소설의 무게를 제대로 가늠해 볼 수 있는 진지한 주제의 작품이 내년에는 꼭 새롭게 독자들과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권영민 문학평론가·서울대 교수
송기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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