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멈과 손주가 싸워대는 소리에 내리던 눈들이 놀라 공중으로 튀어오른다
싸우다 지친 할멈이 마루로 나와 쌈지에 넣어두었던 양귀비 열매를 씹는다
광란 일어났던 아랫배가 따스해져간다
함석지붕 쌓인 눈이 녹아내린다
- 시집 ‘섬들이 놀다’(창비) 중에서
‘오냐, 오냐’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버릇이 없어졌다. 사탕 쥐어주고, 쓰다듬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프던 놈이 눈엣가시다. 보다보다 호통 한 번 치니 바락바락 대든다. 재떨이, 성냥갑 던져도 용케 피하고 죄 없는 바람벽 앙가슴만 어이쿠! 앙살 부리던 사춘기 늦손자 붉은 혀 내밀어 ‘메롱’하고 할머니 쌈짓돈 훔쳐 마을로 달아난다.
서너 개 남은 이빨론 언제나 소화불량. 광란, 곽란 다 일어난 할멈 아랫배 오랜 양귀비 미인계에 겨우 진정된다. 그렇거나 말거나 겨울 하늘은 묵직한 구름 자루 뒤집어 떡살 쏟아 붓고, 김 모락모락 나도록 겨울 햇살 지피는데 저런, 까치 한 마리 짖는 바람에 아까운 시루떡이 함석 비탈을 타고 투두둑.
서산에 노루꼬리 넘어가고, 강어부 돌아오고, 앞마을 저녁연기 솔솔 오르면 손자놈 쭈뼛쭈뼛 고샅길 되오르고 할멈은 또 목 빼어 사립문 내다보겠지.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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