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의 점술촌(占術村)인 서울 성북구 동선동의 세칭 ‘미아리 점집’. 4일 이곳에서 만난 역술인 H씨는 “요즘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는 ‘언제쯤 돈을 만질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초엔 늘 그렇듯이 2004년 새해를 맞아 점집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무엇보다 궁금해 하는 것은 집안의 평안과 가족의 건강. 하지만 경제사정이 좋지 못해서인지 취업이나 이민 등에 대해 묻는 사람들도 많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사주공간’을 운영하는 차현수씨(52·여)는 “요즘은 취업 유학 이민에 대한 상담이 많다”며 “낮 시간대에 돈 문제를 상담하는 남자 손님이 많이 는 것도 새로운 경향”이라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앞 ‘e-사주공간’에서 사주를 봐주는 역술인 K씨는 “예전처럼 재미 삼아 사주를 보던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다”면서 “취직이 안돼 이민 가고 싶다며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만난 고모씨(27·여)는 “요즘 여대생들은 결혼도 일종의 취직이라며 ‘결혼고시’라고 부른다”면서 “취업을 해야 할지 차라리 결혼이나 하는 게 나은지 물어보러 왔다”고 털어놨다.
최근 들어 특이한 점은 ‘역술인 자격증’을 따 전문점술가가 되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 서대문구 신촌의 한 사주카페에서 만난 한 20대 여성은 “불황 때 점집이 잘된다고 해 점술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역술인협회의 박형용 사무총장(58)은 “예전엔 심심풀이 삼아 역술을 공부하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은 역술을 사업수단으로 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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