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역사는 너무도 허망하게 무너진 마지노선에 그 교훈을 새겼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프랑스는 독일의 공격에 대비해 접경지대에 대규모 요새선(要塞線)을 구축했다. 육군장관 앙드레 마지노의 제의에 의해서였다. 그의 이름을 따 이 지하의 철옹성은 마지노선으로 명명됐다.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을 따라 북쪽으로는 벨기에, 남쪽으로는 스위스의 국경에 닿았다.
1930년 착공해 10년 만에 완공됐다. 당시 축성기술의 정수를 모았고 지형의 요해(要害)를 이용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참호와 콘크리트 방벽은 물론 냉난방 시설과 지하철도까지 갖추었다.
그러나 마지노선은 1940년 5월 독일군의 기습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난공불락이라고? 그러면 돌아가지. 그것이 히틀러의 전략이었다. 독일이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벨기에를 먼저 친 것은 이 때문이었다.
벨기에에도 마지노선은 있었다. ‘에방에말 요새.’
그러나 독일은 허를 찔렀다. ‘지상에서 막히면 하늘에서 공격한다.’ 고성능 폭약과 화염방사기로 무장한 특수부대가 40여대의 글라이더에 나눠 타고 벨기에 후방 깊숙이 침투했다.
결과적으로 마지노선은 프랑스군의 방심과 전략적 오판을 불러왔다.
프랑스는 땅속에 성(城)을 쌓고 그 속에서 깊은 잠을 잤다. 그때 독일은 하늘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우매(愚昧)한 역사는 반복된다던가.
1991년 걸프전 당시 마지노선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 이라크의 ‘사담 라인’이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다국적군이 사우디아라비아를 통해 진격해 올 것으로 판단했다. 접경지대에 지뢰밭과 기름도랑, 모래방벽을 설치하고 철벽의 ‘사담 라인’을 구축했다.
그러나 정작 다국적군은 ‘사담 라인’을 우회해 쿠웨이트 서쪽에서 이라크 영내로 진입했다. 등 뒤에서 다국적군을 맞게 된 공화국수비대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들은 스스로 ‘사담 라인’에 포위되고 말았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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