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셀프 디자인족/"난 카멜레온…다양하게 살고 싶다"

  • 입력 2004년 1월 8일 16시 14분


《우리들은 변신을 꿈꿀까. 만약 그렇다면 어떤 변신을 원할까.

위크엔드는 변신의 유형을 직업, 성격, 이미지·스타일, 몸매, 생활습관·라이프스타일 등 5개 분야로 나눠 여론조사 기관인 아이클릭과 공동으로 인터넷 설문 조사를 실시해봤다.

만 25∼3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93.6%가 변신을 원한다고 답했다. 거의 모두가 ‘더 나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변신욕구를 갖고 있는 것이다.

변신의 유형(복수응답)에 대해서는 생활습관·라이프스타일이 78.7%로 가장 많았으며 직업(44.6%), 몸매(42.0%), 이미지·스타일(33.0%), 성격(31.5%) 순이었다. 성별로는 남성은 생활습관·라이프스타일, 직업, 이미지·스타일, 몸매, 성격 순이었으며 여성은 생활습관·라이프스타일, 몸매, 직업, 성격, 이미지·스타일 순으로 다소 차이가 있었다.

유형별로 변신을 이루었거나 꿈꾸고 있는 셀프 디자인족 5명을 만나보았다.》

#직업/회사생활 접고 사시 합격 이호섭씨

이호섭씨, 만나서 반가웠어요.

지난해 말 서른일곱 나이로 사법고시 합격한 것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대학졸업 후 6년여의 증권사 생활을 접고 고시에 도전한다는 것은 보통의 의지와 결단으로는 어려운 일이리라 짐작합니다.

합격자 발표가 난 지 보름도 안됐는데 벌써 사법연수원 과정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다니. 자투리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했죠. “변신하려면 굳게 결심해야 하는데 결심 이전에 사전조사와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고시 선배들을 만나보고 5년은 걸리겠구나,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요.

1998년 결혼 직전 고시 공부를 시작한다고 선언했을 때, 지금의 아내가 된 당시 약혼녀가 흔쾌히 동의해 준 것이 큰 힘이 됐다고요.

변신을 준비하던 당신의 지난날을 들어볼까요. 오전 9시 관악구 신림동 독서실에 도착해 오후 10시 귀가. 하루 8시간 집중 공부 원칙. 학원 수강. 그룹 스터디. 틈틈이 운동, 비디오 등 여가로 스트레스 해소. 3세 아들은 본가에서 양육. 교통비 6만원, 독서실 비용 10만원, 식대 14만원, 교재비 10만원, 학원 20만원 등 월 60만원 소요.

호섭씨는 사법고시를 그저 하나의 자격시험으로 인식한다고 말했어요. 신분 상승과 고소득을 기대하는 ‘뻔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 기뻤습니다.

직업 변신의 첫 걸음을 뗀 당신의 말 중 인상적인 것을 옮깁니다.

“슬럼프는 온다. 그러나 목표가 뚜렷하면 언젠가는 이룬다.”

“특화해야 산다. 모든 직업에 적용된다.”

“가장 큰 목표, 즉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를 먼저 결정한다.”

#이미지/스타일리스트 최선임씨

스타일리스트 전문회사 ‘씬(SCENE)’의 공동 대표이자 용인 송담대 스타일리스트 학과 겸임 교수인 최선임씨(38).

영화 ‘싱글즈’의 주연 배우 장진영과 엄정화를 비롯해 송선미 채시라 한채영 유민 등의 스타일 연출을 담당한다.

한 번 만난 뒤 다음번에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그 자신이 매일 스타일을 변신시키는 ‘변신의 귀재’다. 그와의 스타일 문답.

Q:스타일은 무엇인가(그의 사무실 벽면에는 ‘Style is a culture’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A: 스타일은 전략이다. 시간 장소 상황(T.P.O)에 맞는 연출이 가장 멋스럽다. 내가 가장 자주 통화하는 전화번호는 일기 예보 안내 ‘131’이다. 날씨를 고려해 한 주일간의 의상, 신발, 액세서리를 다이어리에 꼼꼼히 적는다. 열린 생각과 치밀한 계획이 스타일의 관건!

Q: 신년에 계획하는 스타일의 변신은….

A: 지적인 이미지로 변신하고 싶다. 스타일이 감각적이고 즉흥적이라 생각하는가. 천만에 스타일은 만드는 것이다. 여성스러운 A라인 스커트를 적극 활용할 것이다. 평소 사용하는 어휘에도 신중해야겠다. 변신하려면 연구가 필요하다. 나는 늘 한번에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한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모르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거나 마른 빨래를 갠다.

Q: 스타일 변신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A: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것이 가장 손쉽다. 나는 옷을 거의 버리지 않고 수선한다. 평범한 검은색 스커트 안쪽 밑단에 핫핑크색 공단을 손수 달아 입는 식이다. 평소 조합하지 않던 방식으로 옷을 입어보라. 기억하라. 스타일이 바뀌면 기분과 행동도 바뀐다.

#성격/유머경영所 운영 양내윤씨

양내윤씨(33)가 건넨 명함에는 유머 경영 컨설턴트라는 이색 직업이 적혀있다.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대기업 토목기사로 일하다가 레크리에이션 지도자 자격증을 딴 뒤, 현재 여러 기업을 돌며 유머 리더십 강연을 하고 있다. 지난해 유머경영연구소를 열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웃음’과 같이 유머는 중세뿐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도 대인 관계의 중요한 기술로 활용된다.

그는 원래 수줍음을 잘 타는 내성적 성격이었다. 주변에서 닮고 싶은 유머러스한 사람을 찾아 그의 언어, 표정, 몸짓 등을 흉내 내면서 외향적 성격으로 변신했다. 성격을 완전히 바꾸는 것은 힘들지만 웃을 수 있는 환경을 지속적으로 만들면 자기 안에 있는 외향적 성격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다양한 물건이 진열된 편의점에서 아이디어를 찾는다. 얼마 전 편의점에서 ‘컨디션’ ‘위력’ ‘땡큐’라는 이름의 드링크류를 발견하고 강의 소품으로 활용했다. 다음과 같이.

“여러분의 ‘컨디션’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제발 여러분의 탁월한 ‘위력’을 보여주세요. 그러면 진심으로 ‘땡큐’입니다.”

각 단어가 나올 때마다 탁자 밑에 숨겨둔 드링크를 꺼내 보이자 좌중의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졌다고.

“원하는 성격으로 변신하려면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 중 최고가 즐거움입니다. 남을 웃기려면 ‘나는 즐거운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일단 중요합니다. 주변 사람과 사물에 대해 관심을 갖고 늘 메모하는 습관도 도움이 됩니다.”

후천적 노력에 의해 유머 감각이 길러진다고 주장하는 그는 기자를 만나기 전 거울 앞에서 크게 입을 벌려 ‘아-에-이-오-우’ 연습을 한 뒤 스스로를 향해 ‘씩’ 한 번 웃었노라고 고백했다.

#몸매/직장 그만두고 주부로 한영아씨

주부 한영아씨(39). 지난해 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뒤 6월부터 주 3회 시작한 운동 덕분에 화려하게 변신 중이다. 단단해진 몸매처럼 일상생활에 탄력이 붙었다. 좋은 스프링 침대의 쿠션 감각처럼.

화요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청담동 캘리포니아 피트니스 센터.

서울의 패션 스트리트가 시원하게 내다보이는, 통유리창 건물의 러닝 머신 위에서 잘 디자인된 몸매의 남녀들이 달린다.

컬러풀한 스포츠 브래지어, 보디라인을 과감히 드러내는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그들을 보는 순간 한씨의 운동 욕구가 샘솟는다. 전신 거울 앞에서 자신의 근육 움직임에 집중하는 시간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한씨는 지난해 이곳의 평생회원으로 등록한 뒤 지난달부터 개인 트레이너 강습을 받고 있다. 비싼 강습비를 지불하는 대신 인생의 자신감과 너그러움을 얻었다.

그는 가벼운 러닝 등 유산소 운동 20분→개인 트레이너와 함께 하는 근력 운동 50분→사이클 등 유산소 정리 운동 20분 순으로 운동 프로그램을 성실히 지켜 나간다. 여성들이 간과하기 쉬운 근력 운동을 통해 그는 30%에 육박하던 체지방률을 24%대로 끌어내렸고, 오랜 직장 생활로 허약해진 허리 근육을 강화했다.

“운동을 마치면 얼굴에 탄력이 붙는 것 같아 상쾌해요. 흰 쌀밥 대신 현미 잡곡밥, 케이크 대신 삶은 고구마를 간식으로 선택하게 됐어요.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살림이 지루했는데 요즘에는 저녁 식사 준비하면서 괜히 콧노래가 나요.”

예전과 달리 허리가 꼿꼿이 서는 느낌이 들면서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다. 골프, 중국어 공부, 70세까지 할 수 있는 평생 직업 찾기….

#라이프스타일/레코드가게 운영 박종호씨

지난해 8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문을 연 클래식 전문 레코드 숍 ‘풍월당(風月堂)’ 박종호 사장(44)은 본래 정신과 의사였다.

구리와 부산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그는 지난해 의사 일을 그만두었다. 부모의 기대에 따라 선택한 일이었지만 자신이 진정 원하는 건 오페라를 듣고 평론을 쓰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이 마흔을 넘기니 억지로 하는 힘든 일은 그만두고 싶더군요. 인생은 사랑하기에도 너무 짧으니까요. 베르디의 오페라 ‘돈 카를로’에는 이런 대사가 있어요. 이 세상의 고통은 무덤에 가서야 따라오지 않는다는. 그러나 원하는 취미 생활을 맘껏 즐기다 보면 근원적인 고통도 조금 덜어지지 않을까요.”

의사 일을 할 때는 주위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는 사회 경제적 지위에 있으면서도 앞만 보고 살았다. 그러나 초등학교 시절부터 들었던 음악 속에 파묻히면서는 옆 사람을 채근하는 일이 없어졌고, 성격도 느긋해졌다. 주위에선 그를 두고 직업적 변신을 했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라이프스타일이 크게 달라졌다고 말한다.

“하루의 활동 시간을 4분의 1씩 나눠 생활합니다. 평론 쓰기, 강연, 레코드 숍 운영, 대인관계에 골고루 시간을 배당하지요. 그리곤 스스로 마감 시간을 정합니다.”

변신을 위한 그의 제안은 ‘다양성을 경험하는 욕구’를 키우는 것이다. 매년 오페라 공연을 찾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내지만 일반 패키지여행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해 남부 프랑스 지역에서 맛본, 크림소스를 얹은 아스파라거스 요리가 일상의 힘이 된다면 이해할 수 있나요.”

글=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사진=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변신 십계명▼

1. 자신만의 재능을 찾으라

평소 동경하던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라. 특별히 배운 적이 없는데도 방법을 잘 알고, 쉽게 이뤄냈던 일이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확신이 안 서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2. 변신의 단계를 파악하라

변신은 무관심→심사숙고→준비→실행→유지 단계의 순으로 진행된다. 심사숙고 단계에서 자기 재평가가 철저히 이뤄져야 하며, 실행 단계에서는 주변의 도움과 보상이 필요하다.

3. 시간 관리가 관건이다

매일 시간 사용 명세서를 작성하면 집중력과 시간 활용도가 높아진다. 시간을 분해하고 마감을 자주 만들어라. 긴급한 일보다 중요한 일에 집중하라.

4. 퇴근 후 3시간을 활용한다

목표를 뚜렷이 세운다. 딱딱하고 지루한 일과 부드럽고 재미있는 일을 적절히 섞어 시간을 배정하라.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공부하라. 독서나 외국어 학습이 좋다.

5. 스타일이 성공을 부른다

스케줄에 따라 의상, 신발, 소품, 메이크업 색상까지 토털 코디네이션할 수 있도록 스타일 다이어리를 만든다. 스타일의 완성은 다양한 표정이다. 무표정하다면 성공할 수 없다.

6. 창의성을 개발하라

거리의 사람들 모습, 새로운 조형물을 관찰하면서 시대의 유행을 읽어라. 아이디어를 메모할 수 있는 도구를 휴대한다. 일을 놀이처럼 즐긴다.

7. 삶을 단순화하라

일과 상관없는 취미생활을 가져라. 한달에 한번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의 여유를 가져라. 자신만의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져라.

8. 인간관계를 중시하라

회사 이외의 인맥을 만들라. 주변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받는다. 단 재정적 도움은 제외한다. 이를 위해서 배우자를 비롯한 가족의 이해와 협조를 구한다.

9. 효과적으로 사과하라

자신의 잘못이라고 판단되면 시기를 놓치지 말고 가능한 한 빨리 사과하라. 조건을 달지 말고 사과하라. 가까운 사람부터, 사소한 일부터 사과하라.

10. 실패의 의미를 깨닫자

실패는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무언가 새로 배웠다는 것을 뜻한다. 실패가 실패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중단하는 것만이 실패하게 만들 뿐이다.

(참고 자료=이민규 ‘1%만 바꿔도 인생이 달라진다’, 니시무라 아키라 ‘퇴근 후 3시간’, 최선임 ‘스타일리스트’, 제임스 프로차스카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변화 프로그램’, 하이럼 스미스 ‘성공하는 시간과 인생 관리를 위한 10가지 자연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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