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에 하루 스케줄과 쇼핑 리스트를 적고 오른쪽에 큼지막하게
빈 공간을 둔, 이 꽤 실용적인 아이템은 하얀 캔버스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살아갈 날들을 일깨운다. 어느덧 다이어리와 많이 친해졌다. 마음에 드는 사진이나 새겨 두고픈 글을 마주치면 가위와 풀을 꺼내들고 다이어리에 스크랩하는 것이다. 두 개의 조명을 머리에 난 뿔처럼 장난스럽게 들고 있는 산업 디자이너
필립스탁의 사진, 일본 아오야마의 꽃시장 사진, 실루엣이 예쁜
얼진 바지 사진, 자투리 털실을 손잡이 부분에 감은 머그컵 사진…다이어리는 후배로부터 받은 선물이지만 그것을 나만의 앨범으로 꾸미는 작업은 ‘나를 위한 선물’이다. 다이어리 속 일기를 살짝 공개한다. ‘러브 액츄얼리에서 마크(앤드루 링컨)의 말은 슬프도록 아름답다. To ME, you ARE PERFECT.’ ‘머릿 속을 스캔하는 기계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러다가 인간이 영영 생각하지 않는 동물이 되는 건 아닐까.’‘사슴 가죽 장갑을 사서
나에게 선물했다. 버스를 타는 일이 많아지면서 장갑이 필요했다. 손 시려본 사람만이 장갑의 고마움을 안다. 남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선물을 해야겠다.’유럽의 대형 광고사 ‘유로 RSCG
월드와이드’가 전망한 2004년 10대 트렌드 중 하나는 ‘나를 위한 선물’이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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