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기자의 현장체험]고요 속 긴장…"독도는 이상無"

  • 입력 2004년 1월 8일 16시 29분


새들도 날개를 접고 쉬어가는 외로운 섬. 독도를 지키는 경비대원들은 이 나라에서 가장 먼저 첫 해를 보고 소원을 빌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가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독도 경비체험을 하고 있자니 오랫동안 잊고 있던 '조국' 에 대한 단상들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새들도 날개를 접고 쉬어가는 외로운 섬. 독도를 지키는 경비대원들은 이 나라에서 가장 먼저 첫 해를 보고 소원을 빌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가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독도 경비체험을 하고 있자니 오랫동안 잊고 있던 '조국' 에 대한 단상들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두 눈을 부릅뜨고 망망대해를 응시하다. 끝없이 검게 펼쳐진 동해.

짙은 어둠 속에 하늘과 맞닿은 바다는 그 경계를 구분할 수도 없다.

대한민국 동쪽 끝, 독도.

이 땅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 독도를 지키는 30여명의 대원들은 대한민국에서 새해 첫 소망을 가장 빨리 비는 주인공들이다.

연말연시 5일 동안 그 대원들과 함께 보낸 독도경비대 체험.

○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

동해항에서 해양경찰 경비정을 타고 7시간.

날씨가 나빠 당초 예정보다 이틀 늦어진 지난 달 28일에야 외딴 섬 독도에 들어갔다.

일본이 자기네 땅 ‘다케시마’라고 부르는 이곳을 우리의 독도경비대가 지키고 있다. 경상북도 지방경찰청 울릉경비대 소속. 울릉도 경비 6개 소대가 두 달씩 돌아가며 파견된다.

경비대가 있는 곳은 동도. 바로 옆 서도에는 어민대피소가 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경계 근무를 섰다. 날도 춥지만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바람이 센데 발 옆은 바로 깎아지른 낭떠러지다.

주임무는 레이더에 나타난 선박의 정체를 확인하고 예정된 항로를 바꾸거나 이상 징후를 발견하면 지체 없이 보고하는 것. 대체로 특별한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육안으로 발견하기 전에 레이더에 먼저 잡히기 때문.

밤에는 어둠 탓에 눈으로는 식별하기가 어렵다. 멀리 오징어잡이배의 환한 불빛만이 간간이 떠돌 뿐이다. 보초 근무는 주간 4시간, 야간 2시간씩. 밤바다를 보고 있자니 ‘무슨 일이 있으랴’ 하는 생각과 ‘그래도 혹시’ 하는 생각에 긴장감이 죄어 왔다 풀어졌다 한다.

독도 근무가 두 번째라는 최중재 수경은 “평소 조국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으면서 이곳에 서면 새삼 조국이란 무엇인가, 상념이 떠오른다. 그리곤 쑥스럽게도 ‘이 땅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 한목숨…’ 같은 다짐을 하게 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대원들의 주임무가 관측이다 보니 생활은 단조로운 편. 오전 7시에 기상해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훈련과 장비점검을 한다. 오후 7시 저녁식사가 끝나면 10시까지 자유시간을 갖고 취침. 이 일과 중에 자기 차례가 돌아오면 보초를 서고 레이더를 관측한다.

새해 첫날 아침, 기상점호를 받는 경비대원들.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하는 아침체조는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독도=이진구기자

○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망망대해의 외로운 섬이지만 연말연시에는 전화통에 불이 난다. 전국 각 방송사, 신문사에서 새해 첫 느낌에 대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운이 나빴는지 1일 새벽에는 해를 볼 수가 없었다. 날씨가 워낙 흐렸기 때문. 이곳은 맑은 날이 1년에 60일이 채 안 된다.

워낙 오기 힘든 곳이라서인지 대원들은 곳곳에 자신이 왔다갔다는 흔적을 남긴다.

대원들이 키우는 개 집에는 ‘개 집’이라는 큰 글씨 옆에 ‘2003.10.14 독도 삽살개 집 제작하다’, ‘HQ 발전 50 권용대 흔적남기다’, ‘DokDo Defense’, ‘발전 51기 이창호, 만들 때 옆에서 구경하다’ 같은 장난기 어린 글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독도여 안녕∼잘있거라’ 류의 작별 인사는 물론 군인답게 ‘꿈(=제대)은 이루어진다’, ‘내 인생은 이제부터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다’는 사랑가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대원들은 주로 인터넷과 탁구 또는 TV시청으로 여가시간을 보낸다. 틈틈이 영어나 한자 공부를 하는 대원들도 있다. 인터넷이 케이블이 아닌 위성으로 연결되다보니 속도는 무척 느리지만 메신저나 채팅에는 큰 불편이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원은 한꺼번에 메신저 창을 4개나 켜놓고 각기 다른 여자친구와 채팅을 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이기도 했다. 흔적을 다른 곳에 남기는 대원이다.

고향이 전북 부안인 양해만 상경은 늘 외부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일년 내내 부모님이 시위에 나가서 다치실까봐 잠도 잘 못 잤단다. 그의 친구들은 대부분 부안 근처에서 전경으로 근무 중이다. 주민이든, 진압 경찰이든 다치는 사람은 모두 그의 주변 사람들이다.

“내년에는 빨리 끝나야 할 텐데요….” 그가 새해에 바라는 작은 소망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 땅이지라"

독도 사랑이 유별한 군인만 골라 보내지는 않을 테니 이곳에 있다고 한일관계에 대해 무슨 견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닐게다.

이리저리 일본의 망언과 독도 영유권에 대해 물어봤지만 씩 웃는 것 외에는 말이 없다.

생각 끝에 아주 단순 무식하게 물어봤다.

“일본이 자꾸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데 아무 생각이 없느냐.”

별 말없이 눈만 멀뚱하게 뜨고 있던 김해태 일경의 어눌한 한마디.

“독도는…저희 땅이지라.”

독도 문제만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무는 사람도 많지만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독도는 우리 땅인데.

1일 새벽 해돋이는 보지 못했지만 대원들은 그래도 모두들 소원을 빌었다. 여자친구가 도망가지 않았으면…, 빨리 제대했으면…, 부모님이 건강하시길…. 대부분 일반적인 내용들. ‘경제 회복’을 소망한 대원도 있었다.

이날 오전, 닷새간의 생활을 마치고 떠나기 직전 우리는 차가운 파도가 거세게 부서지는 선착장 위에서 함께 노래를 불렀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땅∼우리땅!”

새해를 맞는 기쁨보다도 더한 그 무엇인가가 가슴 밑바닥에서 뜨겁게 치밀어 올라왔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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