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속의 얼짱 몸짱]<2>누드는 환상이다…"꿈깨"

  • 입력 2004년 1월 11일 17시 15분


미국 화가 필립 펄스타인의 ‘사자상 옆에 누워있는 누드’(1998년). 벌거벗은 여인이 화려한 담요 위에 다리를 꼰 채 도발적 자세로 누워 있다. 작가는 여체의 발과 손등에 드러난 핏줄까지 소름끼치도록 사실적으로 그려 누드의 환상을 걷어냈다. 그림 출처는 뉴욕 로버트 밀러 갤러리가 발간한 도록. 사진제공 이명옥씨
미국 화가 필립 펄스타인의 ‘사자상 옆에 누워있는 누드’(1998년). 벌거벗은 여인이 화려한 담요 위에 다리를 꼰 채 도발적 자세로 누워 있다. 작가는 여체의 발과 손등에 드러난 핏줄까지 소름끼치도록 사실적으로 그려 누드의 환상을 걷어냈다. 그림 출처는 뉴욕 로버트 밀러 갤러리가 발간한 도록. 사진제공 이명옥씨
옷이 날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누드가 유행이다. 요염한 누드 걸들은 쭉쭉 빵빵 몸매를 과시하며 ‘누드는 가장 황홀한 장신구요 벌거벗은 몸보다 더 아름다운 옷은 없다’며 노골적인 추파를 던진다.

30대 아줌마가 20대 몸매를 과시하며 인터넷에 거의 벗다시피 한 몸을 올려 화제가 되고, 최고의 옷맵시를 자랑하는 여배우들마저 옷을 벗어 던지고 벗은 몸을 보여 주느라 혈안이다.

인간의 오감 중 성욕을 가장 자극하는 것은 시각이며 눈의 욕망을 채워 주는 것은 곧 돈 방석에 앉는 지름길이니, 가히 ‘누드 마케팅의 전성시대’를 이해할 만도 하다.

인체의 비례 등 모든 면에서 이상적 아름다움을 보여준 신고전주의 화가 앵그르(1780∼1867)의 ‘샘’(1856). 샘물의 정령인 님프(요정)의 청순하고 신비한 이미지에 감미로운 에로티시즘이 절묘하게 혼합됐다. 파리 오르세이 미술관 소장. 사진제공 이명옥씨

동물학자 데스먼드 모리스는 저서 ‘털 없는 원숭이’에서 남성의 에로틱한 급소는 성기보다 ‘눈’임을 거듭 강조했다. 실제로 남성이 누드를 보는 것은, 많은 여성을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소유할 수 없는 ‘만성적 욕구 불만’을 해소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누드 붐이 거센 것도 벌거벗은 몸이 최음제와 성 페로몬(짝을 유인하기 위해 동물의 몸에서 분비되는 물질)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관음증을 부추기는 사이비 누드의 범람으로 누드하면 포르노가 연상되지만, 정작 오리지널 누드의 기원은 지극히 철학적이고 예술적인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누드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에서 창안되었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몸은 결함을 가졌지만 육체를 구성하는 각 부분들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조합하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인체가 만들어진다고 믿었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적 아름다움을 실제로 확인하고 싶은 신념에서 그리스인들은 인체를 수학적 비례로 측정하고 디자인한 ‘꿈의 누드’를 개발했다. 누드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가공의 이미지요, 말 그대로 현실에서는 도저히 실현될 수 없는 꿈의 산물인 셈이다.

그러나, 현대 화가들은 인체를 비현실적으로 미화시켜 누드로 변형시키는 허상을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대표적인 화가가 미국의 펄스타인(80)이다. 펄스타인은 누드가 절대적이고 이상적인 미의 상징이라는 예술의 전통적 공식을 거부하고 정직한 눈으로 여체를 바라보았다.

인체의 결함을 대대적으로 보수한 대칭과 비례, 균형을 갖춘 맞춤형 누드 대신 살과 피를 지닌 실제 모습 그대로의 여체를 그린 것이다. 벌거벗은 여인이 화려한 담요 위에 다리를 꼰 채 도발적 자세로 누워 있지만 끈끈한 욕정을 느낄 수 없다는 평을 듣는 것도 누드를 전혀 미화시키지 않은 탓이다.

펄스타인은 여체의 발과 손등에 드러난 핏줄까지 소름끼치도록 정밀하게 묘사한 극사실 기법으로 말초적인 감각에 찬물을 끼얹었다. 또 포르노적인 시각의 접근을 막기 위해 여인의 얼굴과 신체 일부분을 과감하게 절단하는 충격적인 구도도 사용했다. 여인의 알몸을 코앞에 들이미는 펄스타인의 파격적 구도와 기법은 누드가 허상임을 확연하게 깨닫게 해 준다.

누드는 눈의 에로티시즘을 자극하는 신기루요, 환상이다. 누드의 화면 발에 속아 애꿎은 몸을 타박하는 여성들이여! 애인과 아내의 몸매에 누드 걸(Nude girl)의 허상을 겹쳐 보며 한숨짓는 남성들이여! 눈의 ‘비늘’을 벗기면 진실의 밑바닥에 도달할 수 있으리니, 오픈 유어 아이즈(Open your eyes)!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국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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