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무어의 작업실에서 2년간 조수로 있으면서 볼륨과 공간의 이해를 배웠다는 그는 형태를 모호하게 처리함으로써 오히려 인체 내면에 있는 격정적 감성에 집중하도록 작품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체를 견고한 하나의 덩어리로 파악하되 공간 구조로 이해해 내적 감성의 변화를 시각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조각철학. 아프리카 목각이나 청동 조각, 고대 중남미의 조각, 동북아시아와 인도의 돌 조각 등에서 영감을 받은 그의 작품들은 모든 재료가 각기 표현성과 생동감을 지닌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이번 전시회에는 목재와 도자, 테라코타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그의 구상조각들이 선보인다. 지난 50여 년 동안 그가 지속적으로 작업해온 철 소재의 미니멀리즘적 추상조각에서 탈피한 작품들이란 점에서도 관심을 끈다. 전시회 제목 ‘야만인들(The Barbarians)’은 그가 1999∼2002년 제작한 7개의 연작 이름에서 따왔다.
1985년 그리스를 방문한 작가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제우스 신전 등 고전 건축물을 접하면서 구상조각과 건축에 흥미를 갖게 됐다. 이후 그는 고전미술 양식을 현대적 기법으로 소화해 고대인의 생명력을 조각으로 표현했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옛날 초원을 달리던 ‘야만인들’의 역동감과 긴장이 물씬 풍겨 나온다. 그곳에선 테라코타, 목재, 가죽, 강철 등으로 만든 여섯 명의 기수가 관객들을 맞는다. 말에 탄 채 창을 휘두르고, 화살을 겨누고, 채찍을 휘두르는 기수들의 모습은 장엄한 스펙터클 영화 장면처럼 펼쳐져 있다. 이들은 모두 정지상태에 있지만 마치 무희(舞姬)가 다음 동작을 위해 멈춘 바로 그 순간처럼 생생하게 살아 있으며, 동시에 춤추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의 조각은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자연과 인공이 섞인 혼종의 조각이기도 하다. ‘비밀의 계단’ 등 1994년부터 99년까지 제작된 추상작품 5점도 선 보인다. 2월29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02-2124-8971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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