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넷 키우기]<8>학원 보내지 않은건 아이에 대한 믿음

  • 입력 2004년 1월 11일 17시 41분


큰애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주위에서 과외나 학원을 함께 보내자는 권유가 많이 들어왔다. 우리 부부는 학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어 그때마다 거절을 하였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6학년이 되니 주위의 거의 모든 또래들이 중학교 과정을 선행학습하느라 학원에 다녔다. 우리 아이만 뒤쳐지는 게 아닌가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내 아이 공부는 내가 책임진다’는 초심을 잃지 않고 시류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큰애도 우리의 마음을 이해했고 ‘학원에 다니지 않고도 공부 잘하는 아이’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라고 자부했다. 그러나 수학과 영어 학습지만은 철저히 시켰다.

수학 학습지는 6세 때부터 꾸준하게 해오고 있었고, 영어는 만화영화 등 비디오테이프를 많이 보여주다가 5학년 2학기부터 학습지를 시작했다. 학습지는 그날 푼 것은 반드시 그날 검사하여 틀린 것은 다시 풀게끔 하고 영어는 우리말 문장을 불러주면 영어로 작문을 할 수 있는지 점검했다.

국어와 사회는 워낙 아이가 책을 많이 읽으므로 걱정을 하지 않았다. 특히 큰애는 책을 읽거나 TV를 보다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항상 백과사전을 찾아서 해결하였다.

과학도 특별히 가르친 것은 없다. 다만 어릴 때부터 과학관에 자주 데리고 다녔다. 방학 때면 과학캠프에 보내고 과학관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에도 많이 참여시켰다.

주말이면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자연과 벗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했다. 오가는 차 안에서는 어려운 수학문제를 쉽게 푸는 방법이나 역사 이야기, 고사성어에 얽힌 이야기 등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러다 지루하면 스무고개, 끝 말 이어가기, 노래 부르기 등 온 가족이 참여하는 게임을 즐겼다. 또한 남편은 아이들의 황당하고 엉터리 같은 질문에도 자상하고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곤 했다.

학원에 보내자는 주위의 권유에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아이에 대한 우리 부부의 이런 기초작업이 있었고 또 아이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큰애가 중학교에 들어가던 시기는 우리 집으로서는 어려운 때였다. 그 즈음 나는 늦둥이를 얻어 아기에게 매달려야 했고 남편은 다니던 직장에서 나와 사업구상에 골몰하느라 함께 참여하던 아이들 교육에서 한발 물러서게 되었다.

남편은 지금도 큰애가 사춘기에 진입하던 그 시절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걸 안타까워한다. 특히 큰애가 작년에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고 한바탕 홍역을 치를 때 몸은 함께 있었으나 마음이 함께하지 못했던 그 시간들에 대해 큰애에게 많이 미안해했다.

며칠 전 대학 동기들 모임에 다녀온 남편이 “세검정 일대(큰애의 학교 부근)에 아빠의 밥상토론이 네가 대학 합격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소문이 났다더라”며 큰애에게 말을 걸었다. 큰애 담임도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걸로 보아 아마 큰애가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아빠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컸구나 싶어 새삼 큰애가 듬직해 보였다.

조옥남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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