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바이바이'…"내 뿌리는 한국…숨기지 않아"

  • 입력 2004년 1월 11일 17시 47분


◇바이바이/ 이경자 글 시모다 마사카츠 그림 고향옥 옮김/190쪽 7000원 우리교육(초등 고학년 이상)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 역사는 당시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를 이은 아픔으로 이어진다. 자신이 원했던 삶이 아닌, 식민지 국민이기 때문에 일본의 갖가지 일들에 강제 징용된 우리 동포들은 조국이 광복했지만 돌아오지 못한 채 눌러 있어야 했다. 더구나 식민지 출신자들은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본에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도 극심한 차별을 받았다. 지금은 어느 정도 권리를 찾고, 차별 제도가 없어지긴 했지만 그것은 작가의 말처럼 '권리를 찾기 위해 싸워 온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본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의 신산한 삶을 초등학생 가즈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이 때문에 이야기 전체의 흐름이 결코 무겁지 않고 한국의 독자들에게 아픈 역사를 인식시키려는 의도도 드러나지 않는다. 철저하게 가즈의 시선에 머물면서 가즈의 일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재일동포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한다. 가즈는 어른들이 차별을 참아내면서 살 수밖에 없는 까닭, 공부 잘하는 언니가 변호사의 꿈을 접어야만 하는 까닭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지도 모른다. 조선인을 무시하는 같은 반 친구들의 말을 들으면서 가즈는 자신이 조선아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다. 그래서 친한 친구 스나가 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가즈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을 때도 가즈는 스나를 모른 척 외면하고 말았다.

고향에 있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편지를 받은 날, 가즈 아버지는 조국에 갈 수 없었던 오랜 세월을 참아 온 만큼 침착하게 할머니의 명복을 비는 자리를 마련한다. 제단 위에 놓인 20년 전 할머니 얼굴 앞에서 언제나 큰소리만 치던 아버지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다. 가즈는 아버지 옆에 앉아 친구에게 잘못했던 일들을 얘기한다. “조선 사람으로 태어난 걸 싫다고 생각한 사람은 가즈 너만이 아니다”는 아버지의 고백을 들으면서 가즈는 친구에게 용서를 빌 용기가 생긴다.

“바이바이. 뭐든 다.”

오사카로 떠나는 스나짱과 작별인사를 나누며 가즈는 이제까지의 비겁한 자신과도 작별한다. 반 아이들에게 ‘조센징’이라는 놀림을 당할까 봐 전전긍긍했던 가즈가 아닌, 떳떳한 조선 아이로 거듭나려는 가즈의 모습이다.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주인공 가즈처럼 우리 아이들도 자신의 뿌리를 알고 당당하게 현실과 맞설 수 있기를 바란다.

오혜경 주부·서울 금천구 시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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