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세 청년 배역 위해 체력훈련
조재현은 29일 막이 오르는 극단 실험극장의 ‘에쿠우스’에서 주인공 알런 역으로 출연한다. 1990년말부터 91년까지 8개월간 이어진 공연에서도 그는 알런이었다. 스물다섯 살, 넘치는 힘으로 팬들을 사로잡았던 그는 이제 불혹(不惑)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청년 알런으로 무대에 선다.
“열정으로 따지면 14년 전이 오히려 더 중년에 가까웠어요. 그 때는 집에 두 살짜리 아들(수훈)이 있었거든요.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연습하는 동안에도 자꾸 시계를 보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지금은 젊은 시절의 감수성과 의욕이 다시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세월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몸인데…. 체력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그는 요즘 서울 평창동 집에서 혜화동 연습실까지 달리기로 오간다. 매일 30∼40분 뛰면서 체력을 기르고 있는 것. 매일 오전 11시면 연습실에 나와 밤 10시까지 연습에 몰두한다.
○ “느슨해지지 않으려 무대 섰죠”
서른아홉의 나이에 열일곱 청년의 역할에 도전하는 것은 하나의 모험. 1990년 그는 단지 가능성 있는 젊은 배우였지만, 지금은 TV와 스크린에서 확고히 자리 잡은 스타가 됐다. 그의 말대로 “이번 공연은 잘 해야 본전”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그를 이런 모험으로 이끌었을까.
“연극은 참 고통스러운 작업입니다. 영화나 TV는 잘 안되면 다시 찍으면 돼요. 하지만 연극은 막이 오르기 전에 이미 최선의 상태를 만들어 놓고 시작합니다. 무대는 거짓말을 못해요. 배우가 연기를 하다보면 그저 쉽게, 편하게 하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요즘이 그런 때입니다. 그런데 저는 긴장이 풀어지는 걸 참을 수 없어요. 요즘은 연습하면서도 긴장되고 떨립니다. 그런데 그 떨림이 참 즐거워요.”
○ “에쿠우스 첫무대때 패기 살릴것”
그에게 알런은 꼭 한번 다시 도전하고 싶은 역할이었다. 무대의 충만함을 가르쳐준 역이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기회를 엿본 끝에 이제야 알런으로 돌아왔다.
“마흔이 다 되어 청년 알런을 맡는 것이 어쩌면 팔십 노인의 역할을 하는 것보다 더 진실할 수 있어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그 인물을 끄집어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연기에는 자신 있는데…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줄지가 문제죠.”
별 일 아니라는 듯 이야기했지만 그가 느끼는 부담감은 만만치 않아보였다. 그는 “대사를 잊어버리고 허둥대는 꿈을 꾸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배우를 연극배우, 탤런트, 영화배우로 구분 짓는 것이 싫어요. 저는 그저 연기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하지만 연극은 다른 장르와 틀린 점이 있어요. 바로 관객과의 호흡이죠.”
그런 만큼 ‘새로운 알런’을 만나기 위해 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찾았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에쿠우스는▼
영국 극작가 피터 셰퍼의 ‘에쿠우스’는 말 6마리의 눈을 찔러 죽인 17세 청년의 실화를 다룬 작품. ‘에쿠우스’는 라틴어로 말(馬)이라는 뜻이다. 1973년 영국에서 초연됐으며 한국에서는 1975년 9월 극단 실험극장이 무대에 올려 6개월 장기공연이라는 한국 연극사 초유의 기록을 만들어냈다. 당시 주인공 앨런 역을 맡았던 배우는 강태기. 그는 이 작품으로 연극계 최고 스타로 떠올랐으며 이후 4차례 더 앨런 역을 맡았다. 이후 송승환(1981년) 최재성(1985년) 최민식(1990년) 조재현(1990년)까지 앨런 역을 맡은 배우는 대부분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조재현 이후의 ‘알런’ 중에는 ‘빅 스타’가 나오지 않았다. 이번 공연은 김광보씨 연출로 29일부터 3월 7일까지 서울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열린다. 2만5000∼4만5000원. 02-762-0010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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