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에서 초중학교를 다녔는데 한번 눈이 내리면 허리까지 와서 학교에 못 간 적도 많았어요. 에스키모처럼 이글루를 지어 그 안에 들어가 놀던 기억도 나요.”
따끈한 오뎅 국물을 사이에 놓고 대화를 나누는 동안, 드라마 ‘가을 동화’(2001)의 재벌 2세와 ‘킬러들의 수다’(2001)에서의 막내 킬러 등 그가 맡았던 배역과 실제 모습이 잘 겹쳐지지 않았다. 시종일관 나직한 목소리로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를 보며 ‘꽃미남’ ‘미소년’의 호칭에서 전해지는 나약하고 여린 이미지를 찾기는 어려웠다. 예전부터 ‘애늙은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그는 나이에 비해 훨씬 성숙하고 심지가 단단한 청년이었다. 끼가 넘쳐흐르는 타고난 광대라기 보다,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는 배우였다.
○ 제작비 170억-엑스트라 2만명
이 영화에서 원빈의 역할은 가족의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막내아들 진석. 형 진태(장동건)와 함께 징집되면서 역사의 수렁에 빠져든 그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전쟁의 광기에 휩쓸려가는 형과 갈등하며 성장해간다.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촬영기간만 지난해 2월부터 10개월이 걸렸어요. 촬영 자체가 전쟁을 치르는 것 같았습니다.”
총제작비 170억원, 총 엑스트라 2만5000여명, 군복 1만9000벌 등. ‘태극기… ’는 물량 면에서 다른 영화 서너 편 찍을 품이 들어갔다. 그건 배우들의 공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투 신 찍을 때면 여기저기서 폭발물의 섬광이 번쩍이고, 볶는 듯한 총소리에 비행기 굉음까지 귀청이 떨어질 지경이었다. 실검을 총에 꽂고 촬영하다 등을 다치기도 했다. 매일 오늘은 다치지 말아야지 하는 걱정으로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또 많은 인원과 장치가 동원되다 보니 한 가지만 어긋나도 번번이 NG가 났다. “가도 가도 영화의 끝이 안 보이는 것 같으니까 괴로웠죠. 집중력은 떨어지고. 게다가 진석의 캐릭터는 소리 지르고 울고 싸우는 감정 신이 많았어요. 그때마다 치열하게 감정을 되살려야 했으니…..”
○ “전쟁영화 출연 소원풀었어요”
물론 스스로 선택했던 ‘몸 고생 마음고생’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도전이었죠. 꼭 전쟁영화를 해보고 싶었거든요. 진석을 통해 꽃미남이 아닌 배우로 자리매김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구요.”
사람들은 성공한 모습만 기억한다. 1995년 케이블 TV로 데뷔한 뒤 스타가 되기까지 그에게도 시련의 나날이 있었다. 그래도 자존심으로 버텼다.
“뭐든 쉽게 됐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4년 동안 힘들게 보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도 마음속으로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만은 절대 안 잊어버려요.”
○ 나 아닌 나를 보여주고 싶어
원빈은 인터뷰에 잘 응하지 않고 낯가림 많이 하는 배우로 유명하다.
“성격이 내성적이긴 해요. 그런 성격 때문에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란 직업에 더 마음이 끌려요. 남들 앞에서 하고 싶은 것 못하고 가슴에만 담아둔 것을 카메라 앞에서는 죄다 쏟아낼 수 있으니까.”
그는 사람도 영화도 진지한 걸 좋아한다.
“이 영화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사람냄새가 나는 영화를 해보고 싶어요.”
화려한 말솜씨는 아니지만 왠지 그의 말에선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게 바로 배우 원빈의 힘이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태극기 휘날리며' 展도 열려▼
2월 6일 개봉 예정인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주요 장면과 소품 등을 감상할 수 있는 ‘체험! 태극기 휘날리며 전(展)’이 3월14일까지 부산 벡스코(BEXCO) 특별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다.(사진)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테마 파크형 영화 콘텐츠 전시회다.
행사장에 들어서면 영화장면 그대로 재현해 놓은 평양 시가지, 대구역사, 낙동강 방어선 등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차량 25대를 비롯해 2만점의 소품과 자료 등도 전시돼 있다. ‘강제규필름’ 등 주최. 부산 전시를 마친 뒤 서울 등에서도 순회전시를 할 계획이다. 154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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