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아크로폴리스]<3>우리는 누구와 사는가

  • 입력 2004년 1월 14일 18시 44분


《친구, 연인, 가족은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울타리다. 하지만 이들과 어떤 빛깔의 관계를 맺어야 할지는 평생에 걸쳐 고민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이번 회 ‘젊은 리더를 위한 민주시민강좌’에서는 ‘우리는 누구와 사는가’를 주제로 다룬다.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윤혜린 연구교수(44)가 토론의 길잡이가 돼 연세대 인문학부 4학년 한길재씨(24), 성균관대 국문학과 3학년 조한얼씨(25), 2학년 서현아씨(20·여), 이화여대 국문학과 4학년 이소영씨(24), 법학과 1학년 이화영씨(20)가 인생에서 성과 사랑 결혼이 갖는 무게, 개인적 취향과 사회적 책임이 빚어내는 고민 등을 털어놓았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각 발언들은 익명으로 처리한다.》

친구, 연인, 가족은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울타리다. 하지만 이들과 어떤 빛깔의 관계를 맺어야 할지는 평생에 걸쳐 고민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이번 회 ‘젊은 리더를 위한 민주시민강좌’에서는 ‘우리는 누구와 사는가’를 주제로 다룬다.

이화여대 윤혜린 교수와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이 최근 이화여대 교내에서 성, 사랑, 우정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가치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왼쪽부터 한길재, 이소영, 이화영, 윤혜린, 서현아, 조한얼씨. -전영한기자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윤혜린 연구교수(44)가 토론의 길잡이가 돼 연세대 인문학부 4학년 한길재씨(24), 성균관대 국문학과 3학년 조한얼씨(25), 2학년 서현아씨(20·여), 이화여대 국문학과 4학년 이소영씨(24), 법학과 1학년 이화영씨(20)와 인생에서 성과 사랑 결혼이 갖는 무게, 개인적 취향과 사회적 책임이 빚어내는 고민 등을 짚어보았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각 발언들은 익명으로 처리한다.

#100일도 길어 22일이 기념일

▽윤혜린=수많은 드라마나 예술작품에서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사랑의 어떤 요소가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걸까요?

▽A=후회 없이 사랑을 한 적이 있는데 정말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고요. 강의에도 안 들어가서 0점대 학점이 나와 학사경고를 받기도 했어요. 이성으로 통제가 안 되더군요.

▽B=요즘 대학생들은 연애를 위한 연애를 하는 경향이 있어요. 애인 없는 사람은 왠지 모르게 위축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죠. 술 취하면 ‘내가 뭐가 못나서 애인 하나 없냐’며 신세 한탄하는 친구들도 많고요.

▽C=지난해 신입생들이 오리엔테이션을 한 후 7쌍의 커플이 생겼어요. 그런데 한 학기 지나니까 한 커플 남더군요. 진짜 그 사람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대학 왔으니까 연애 한번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D=사랑도 휴대전화나 PDA처럼 하나의 아이템으로 소유하려는 것 아니겠어요? 포장 잘된 걸 고르고, 싫증나면 버리고…. 사랑도 그 비슷한 모습인 것 같아요.

▽E=사랑이 너무 흔하죠. 예전에 어른들은 젊은 사람들이 만난 지 100일 되는 날을 챙기는 것을 보고 한탄했는데 요즘 중고교생들은 22일을 기념일로 챙긴대요. 그런데 22일도 못 넘기는 경우가 많다던데요.

▽A=그렇다면 사랑의 가치가 도대체 뭐죠?

▽B=사랑은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모든 걸 받아들이는 거라 생각해요.

#여자는 낭만… 남자는 포르노…

▽윤=그렇다면 성과 사랑은 일치하는 걸까요?

▽D=사랑과 성의 일치는 이상적이지만 그건 정말 이상적일 뿐이에요. 여자에게 성적 판타지는 낭만과 연결되지만, 남자에게는 포르노와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진실게임’을 하면 남학생들끼리는 룸살롱에 몇 번 갔는지, 성 경험은 몇 번이나 되는지 물어보고 답하는 게 아주 자연스러워요. 남자들은 성 문제에 관해 자신에게는 너그럽지만, 타인 특히 이성의 상대에게는 엄격하고 여자는 그 반대인 것 같습니다.

▽B=사랑을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으로 나눠서 생각하다 보니 문제가 생겨요. 중요한 건 성적인 관계는 두 사람이 다 동의해야 한다는 거 아닐까요?

▽C=남자친구와 ‘접촉’을 하면 부모님께 죄송해져요.

▽윤=왜 여학생들은 그럴 때 늘 부모님한테 미안해할까? 그럼 나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개인이 성적(性的)으로 주체적 결정을 할 수는 없을까요?

▽C=성교육이 실질적 내용을 담아야하는 건 분명하지만 미성년자의 성 관계에 대한 결정권을 인정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에요.

▽D=‘드러내놓고’ 하는 성교육을 했으면 좋겠어요. 어려서 술을 못 마시게 할 때는 술이 맛있는 줄 알았는데 마셔봤더니 쓰기만 하더라고요. 성 문제도 그런 거 아닐까요.

#성 사랑 일치될 때 완전한 결혼

▽윤=요즘 젊은이들의 절반이 ‘결혼은 선택’이라고 하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일동=물론이죠.

▽A=하지만 아직은 제한적인 것 같아요. 예컨대 여자는 능력되면 혼자 살아도 된다고 얘기하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능력 안 되면 결혼해야 한다는 뜻인가 하는 의문이 생겨요. 여자들이 이런 사회분위기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B=결혼에서는 성 사랑 결혼이 일치될 때 가장 강한 결합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마치 답사를 떠나기 전에 준비하듯이 사전에 충분한 고민과 예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리엔테이션 친구가 4년 간다

▽윤=흔히 ‘우정을 쌓는다’고들 표현하는데 우정의 의미와 속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사랑과 달리 우정에는 소유욕이 덜하기 때문에 더 편하고 공유할 수 있는 부분도 많은 것 같아요.

▽B=요즘 후배들을 보면 친구 사귀는 범위가 너무 좁은 것 같아요. 계열제나 학부제 영향도 있지만 1학년 때 사귄 친구들하고만 계속 어울려 지내고…. 교수님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친구가 4년 간다고 하시더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D=전 동성간 우정이 더 진실하다는 생각을 해요. 이성간에는 우정이 사랑으로 변할 수 있는데 실제로 이성친구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 뒤로는 다시 친구로 지내기가 아주 힘들더군요.

▽A=아주 스스럼없이 지내는 후배가 있는데 친구들은 버르장머리 없이 구는 걸 왜 그냥 놔두느냐고 절 나무라요. 아직은 우리 사회의 문화 때문에 나이나 성별을 뛰어넘어 편하게 친구로 지내기는 힘든 것 같아요.

정리=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성 사랑 결혼의 가치관 ▼

성교육을 할 때는 피임과 인간관계에 대한 책임을 가르치는 교육이 중요하다. 성관계에서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은 성행위 결과로 생기는 일에 대해 더불어 책임을 지고 예방조치에도 함께 신경 쓴다는 것을 뜻한다. 또 상대방이 자유로운 결정을 내리도록 하고, 행위 과정 전체에서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헤아리고 진솔하게 대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은 관계이기 때문에 일방통행은 있을 수 없다. 성적 자기 결정권은 남녀 모두 보편적으로 보유해야 하는 권리다.

사랑은 한 인간을 자아라는 단단한 누에고치에서 나오게 해 두 사람으로 이뤄진 새로운 결합관계를 형성하도록 하고, 이 과정에서 갈등과 고통의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사랑은 인생에서 목적적 가치를 갖기 때문에 추구하는 것이지 즐거움이나 쾌락 같은 수단적, 도구적 가치를 갖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사랑에 대한 일반론이나 보편적 주장을 맹신하지 말고 각자 주체적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만의 사랑법을 체득할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의 마음이 일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서로를 구속하거나 자율성을 침범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랑을 위해서는 그 사랑이 상대방의 자유와 양립하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결혼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 살기로 한 약속인 동시에 양가의 결합이며 법적, 제도적, 사회적 단위의 성격을 갖는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부부가 서로 평등을 누려야 하며 서로의 자유를 간섭해서는 안 된다. 육체적, 정신적 화합이 필요하며 가치기준도 어느 정도 유사해야 한다.

사랑과 결혼은 한 개인의 인생에서 중요한 결단이지만 유지 과정에도 엄청난 정성과 에너지가 요청된다. 이를 위해 결혼관계의 공동화(空洞化)를 막아줄 실질적 소프트웨어 마련이 필요하다.

결혼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다. 순간순간 관계를 협상해야 하는 미완의 길이자, 창의적 선택경로를 통해 개성적 삶의 양식을 만들어내도록 촉구하는 거울이다.

윤혜린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추천도서 ▼

△향연(플라톤)=에로스의 기원에 대한 여러 학설들을 검토하면서, 그 본성을 추적해가는 소크라테스와 제자들의 철학적 대화록.

△성의 역사(미셸 푸코)=역사적으로 상이한 유형으로 생산되는 섹슈얼리티의 계보를 그려냄으로써 성에 대한 본질주의적 해석에 도전한 고전.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앤서니 기든스)=성과 사랑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친밀성 영역이 현대사회에서 어떤 변동을 겪고 있는지를 분석한 사회과학서.

△여성/몸/성(장윤필화)=여성 억압과 가부장제적 성 통제의 함수관계를 성, 사랑, 결혼, 가족 등의 영역에서 파헤친 여성학 기본서.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새로 쓰는 가족 이야기(또 하나의 문화)=동거나 독신생활 등 전통적 결혼과 가족제도에 대한 대안으로 한국사회에서 실천되는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한 성찰서.

▼다음 회의 '신아크로폴리스'는 ▼

△주제=우리는 문화의 주인인가 노예인가?

△강사=김용석 영산대 교수

*공개강좌는 안민포럼(www.thinknet.or.kr)으로 문의 바랍니다. 02-521-5160,7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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