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쿠루를 마법사의 저주라고 생각했지만 미국의 세균학자이자 소아과의사인 칼리튼 갸두섹은 이들의 식생활과 관련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포어족의 주식은 콩과 고구마. 남성들은 때때로 짐승을 사냥해 단백질을 섭취하지만 여성과 아이들의 몫은 없었다. 여성과 아이들은 쿠루로 죽은 사람을 추도하는 의식을 벌인 뒤 그 시체를 먹어 오래간만에 단백질을 보충했다. 그리고 수년에서 10년 뒤 쿠루에 걸렸다.
쿠루가 처음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육을 먹는 이들의 문화가 ‘저주’를 계속되게 한 것이다.
1986년 영국 한 농장의 소 133마리에서 시작된 광우병(소 해면상 뇌병증·BSE·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은 쿠루와 증상이 흡사하다. 이 때문에 곧바로 소 450만마리가 도살됐다. 광우병은 초식동물인 소가 오염된 다른 소의 사체로 만든 사료를 먹어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한국과 세계는 연이어 발생한 조류독감과 돼지콜레라 그리고 광우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육식에 대한 경계심은 더욱 높아졌다. 각국 정부는 축산업에 미칠 영향을 줄이느라 분주했다. 그러나 동물은 여전히 관심 밖이었다. 그들의 반란이 시작된 것일까.
○ 자연의 부메랑
6일 오전, 서울 성북구 삼선동 환경정의시민연대 사무실에 30대 후반에서 60대에 이르는 아줌마 6명이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모였다. ‘다음을 지키는 사람들(다지사)’이라는 모임의 회원들이다. 2000년 결성된 ‘다지사’는 환경과 인체를 오염시키는 먹을거리를 줄여서 다음 세대가 건강하게 살도록 하자는 운동을 해왔다.
“광우병은 우리가 소에게 한 잔혹한 일들이 부메랑으로 날아온 거 같아요. 소에게 소를 먹이다니요.”(박명숙씨·37)
“비좁은 공간에서 억지로 몸을 살찌게 하는 기업형 축산은 결국 동물뿐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지요.”(황순영씨·61)
다지사 아줌마들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영국에서는 광우병 걸린 소의 고기로 만든 제품을 먹었다가 변종 크로이츠펠트야프병(vCJD)에 걸려 사망한 사람이 96년부터 지난해까지 138명에 이른다. 영국 정부는 85년부터 96년까지 발생한 광우병의 실태와 원인을 추적해 2000년 10월 26일 ‘광우병 조사보고서(The BSE Inquiry:The Report)’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광우병이 소, 양 등 죽은 가축의 고기와 골분 사료(MBM)를 소들이 먹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전제로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젖소는 우유를 가능한 한 많이 뿜어내고 비육우(살코기용 소)는 더 많은 고기를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길러졌다. 80년대에는 이를 위해 필요한 단백질 양을 정확히 계산해내고 이에 맞춰 사료를 만들 수 있게 됐다. 같은 비용을 들일 경우 식물성 사료보다 더 많은 단백질을 공급할 수 있는 동물성 사료를 쓴 것이다.
미국의 식품규제 관련 정보지인 ‘푸드 케미칼 뉴스’는 96년 소에게 단백질 공급을 위해 식물성 사료만 쓸 때가, 도축하고 남은 소의 장기를 사료로 쓸 때보다 비용이 30% 이상 더 들어간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소를 키우는 비용의 30% 이상이 사료 값으로 나간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싼값의 고단백질 사료를 얻는 것이 육우업계의 핵심 목표일 수밖에 없다. 초식동물의 본성을 어그러뜨린 대가를 이제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96년 영국이 광우병 파동을 겪을 때 미국도 안심할 수 없다며 ‘광우병 미국’(Mad Cow USA)이란 책을 쓴 존 스타우버는 “사람은 채식주의자가 되지 않아도 되지만 축산동물은 반드시 채식을 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글=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사진=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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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생제 사료의 반격
경기도 양주시에서 30년째 유기 농사를 짓고 있는 김준권씨(56)는 몇 년 전부터 소 50 마리를 키우고 있다. 일반 축산농가에서 쓰는 사료의 90% 이상이 외국에서 수입한 배합사료나 곡물사료인데 반해 김씨는 인근 풀무원 공장에서 즙을 짜고 남은 케일과 당근 찌꺼기, 볏짚 등 유기 사료를 쓴다.
이런 유기 사료를 쓰면 쇠고기의 안전성과 영양이 높고 맛도 좋지만 결정적으로 소의 발육이 더디다.
“소는 500∼600kg가 되면 내다 팔 수 있는데 배합사료를 쓰면 2년이 걸립니다. 그런데 저희 소는 그보다 5∼12개월가량 더 먹여야 되요. 사료, 관리, 공간 비용이 더 들지요.”
소, 돼지, 닭 등 3대 가축을 기업형으로 사육하는 농가는 미국이나 한국을 막론하고 모두 영양소가 정확히 계산된 배합사료를 쓴다.
문제는 가축의 살을 빨리 찌우기 위해 성장호르몬이나 항생제를 투여한다는 것이다. 과거 한국 농가에서는 황소의 귀에 여성호르몬을 주입하기도 했다. 성격이 활달하고 거친 황소가 여성호르몬제를 맞으면 온순해지면서 살만 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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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에 들어간 항생제가 동물의 몸에 쌓이면 각종 세균들은 오히려 내성이 강해진다. 98년 독일 로버트 코쉬 연구소의 볼프강 비테 박사는 ‘사이언스’지에 기고한 글에서 “인체에 이런 박테리아가 전염되면 사람이 통상 사용하는 항생제를 복용해도 전혀 듣지 않게 된다”고 주장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97년 가축의 성장촉진제로서 항생제 사용을 금지할 것을 권고했지만 대부분 국가의 육류업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미국은 물론 공식적으로 항생제 사용을 금지한 유럽연합 국가 중 일부도 음성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SBS가 11일 방영한 다큐멘터리 ‘환경의 역습 3부’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한 과장은 “가축사료의 항생제 사용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제일 높다”고 말했다.
○ 가축의 권리
지난해 11월 영국의 ‘세계 영농에 대한 동정(CIWF)’이라는 시민단체는 공장식 농장에서 키워지는 닭이 학대를 받고 있다며 정부를 법원에 제소했다.
8억 마리의 구이용 닭이 급격히 살을 찌우는 바람에 무게를 견디지 못한 다리가 뒤틀리고 심장이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 닭들이 길러져 출하되기까지 걸리는 시간(41일)도 30년 전의 절반 밖에 안된다고 주장했다. 또 번식용 닭은 너무 빨리 성장하게 한 뒤 일부러 굶기기까지 하며 죽는 것을 방지해 되도록 오래동안 알을 낳게 한다는 것이다.
CIWF는 영국정부가 유럽연합(EU)의 축산 동물 학대 금지규정을 어겼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동물의 권리와 영농업계의 상업적 이익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다며 이를 기각했다.
공장식 농장에서 사육되는 가축들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만이 제공된다. 미국의 유명한 채식옹호론자 존 로빈스는 저서 ‘음식혁명’등에서 소 돼지 닭이 비좁은 축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도살되는 광경을 적나라하게 기록했다.
가축에 대한 학대는 비단 사육할 때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충북과 전남북 일대 양계장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하자 방역당국은 수십만 마리의 닭과 오리를 도살 처분했다. 그러나 인력과 기계가 부족해 상당수의 오리와 닭이 산채로 땅에 묻혔다. 이 장면이 그대로 TV에 방영되자 충격을 받은 시민들의 항의가 농림부에 이어졌다.
생명체학대방지포럼의 박창길 공동대표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현장에서 작업을 한 공무원들이 ‘야차(夜叉)’가 된 느낌이라고 하더랍니다. 이는 동물들만의 수난이 아니라 생매장을 한 농민, 공무원, 군인 그리고 소비자 모두의 수난입니다.”
○ 귀중한 것은 생명
한국생명채식연합 대표 이원복씨(39)는 17년째 채식을 해오고 있다. 우유와 계란도 먹지 않는다. 그러나 채식만이 선(善)이라는 식의 이분법은 사양한다. 사람마다 다양성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일련의 동물 관련한 사태를 보면서 “(육식을 피하라는) 하늘의 계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번식이나 사료에 일체의 인공 조작을 배제하고 가축이 자유롭게 방목되는 유기 축산을 꿈꾸는 김준권씨는 이번 일로 육식을 하는 사람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칼로리 영양학 등으로 동물성 단백질의 효용을 배운 사람들이 단번에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 또 현재로서는 더 안전한 대안도 없다는 것이 그가 안고 있는 딜레마다.
박창길 교수는 채식을 하지만 육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채식을 적극 권유하지는 않는다. 다만 건강한 동물을 잡아먹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축산업 자체가 축소돼야 한다고 본다.
다지사 아줌마들은 적극적으로 육식을 기피하지만 사실 남편을 설득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라고 털어놓는다. 가족 친지가 모일 때는 더욱 더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기 어렵다. 그래서 연말같이 모임이 많을 때는 ‘고기를 세 번만 먹겠다’는 결심까지 해야 한다.
이들은 이제 가치관이 변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농가가 기업형 축산을 하면서 가축들을 괴롭히는 것은, 병에 걸릴 위험이 높은 닭과 오리를 무표정하게 생매장 할 수 있는 것은 생명보다 돈이 앞서는 가치관 때문이라는 것이다.
탐욕에서 벗어나 생명의 귀중함을 알고, 안전한 음식을 적게 먹고 만족하면서 사는 삶, 그런 삶을 사는 것이 ‘반란’을 일으킨 동물들을 위로하는 일일 것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Tip▼
아직까지 정부나 관련 기관에서 인증한 친환경축산물은 없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의 친환경 축산물 기준이 있지만 축사 및 사료의 조건 등 한국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소규모 부업형 축산을 하는 농가는 배합사료 공급을 최대한 배제한 채 유기 사료를 쓰고 충분한 운동 공간과 햇빛을 줘서 유기 축산에 가깝게 가축을 기르고 있다. 이렇게 길러진 고기 및 육가공품은 지역 생활협동조합 등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유기농축산물 관련단체
한국생협연대 www.icoop.or.kr, 0505-577-1244
생협수도권연합회 www.ecoop.or.kr 031-405-9560∼2
한국여성민우회생협 www.minwoocoop.or.kr 02-581-1675
환경연합에코생협 ecocoop.or.kr 02-733-7117
예장생협 www.yj-coop.or.kr 02-449-2813
한살림 www.hansalim.co.kr 02-3498-3600
흙살림 www.heuk.or.kr 043-833-0934
초록마을 www.hanifood.co.kr 080-023-0023
무공이네농장 www.mugonghae.com 02-441-8266
올가 www.orga.co.kr 080-596-0086
이팜 www.efarm.co.kr 02-3446-6060
전주한울생활협동조합 www.han-wool.co.kr 063-251-7688
유기농닷컴 www.62nong.com 02-6412-4901
모두팜 www.modoofarm.com 02-743-6445
한국유기농협회 www.organic.or.kr 02-406-4462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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