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세러피]'실미도'…남성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 입력 2004년 1월 15일 17시 09분


사진제공 시네마서비스

사진제공 시네마서비스

어떤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보았다면, 거기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런데 현재 흥행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영화 ‘실미도’는 그 이유를 단박에 알기가 좀 어렵다.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국가정책에 희생된 개인의 비극이라는 소재나, 대중 스타가 나오지 않고 투박한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어떤 것도 젊은층의 관심을 끌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엄청난 수의 관객들, 특히 20, 30대의 마음을 움직인 까닭은 도대체 뭘까.

우선 ‘실미도’가 강한 아버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 때문인 것 같다. 20, 30대는 많은 부분에서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도그마를 잃어버린 세대다. 그 전 세대보다 관습이나 모럴에서 자유롭다. 하지만 그러한 자유 이면에는 스스로를 이끌어갈 절체절명의 원칙에 대한 갈구가 있다. 자녀가 부모에게 반항할 때 부모가 원칙을 지키고 흔들리지 않아야 차츰 반항을 접고 평온한 상태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영화는 강하다 못해 포악하기까지 한 아버지상을 보여준다. 절대권위를 가진 아버지의 상징인 최 준위(안성기)나 조 중사(허준호)는 어머니의 사진을 지닌 훈련병을 징벌하며 오이디푸스적 갈등을 재현한다. 어떤 고통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찬(설경구)과 한상필(정재영) 역시 ‘강한 남성’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확장된 아버지의 이미지다. 영화는 그렇게 강한 아버지들을 죽게 함으로써 다시 권위적 대상이 없는 자유의 상태로 돌려놓는 해결책까지 제시한다.

‘실미도’에서 주인공들의 갈등은 거의 외부로 향해 있다. 교관들이 “김일성의 목을 따자”는 공동의 목표로 훈련병들을 한데 모으듯 이 영화는 등장인물 내면의 갈등을 통해 관객 자신의 내적 갈등을 들여다 볼 틈을 주지 않는다. ‘실미도’가 비장하지만 그 잔상이 오래 남지 않는 이유도 영화가 내 안의 죄의식이나 욕망을 건드려 숙고하게 하기보다 밖의 어떤 대상을 ‘적’으로 설정해 주고 그곳을 향하도록 만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 생각에 ‘실미도’는 한마디로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강하고 질긴가를 그린 영화다. 죽음 직전까지 갔던 인간들이 단지 살려는 욕망 때문에 실미도에 들어오고 온갖 고난과 모멸을 참고 견딘다. 하지만 ‘실미도’는 살기 위해 그 섬에 온 사람들에게 대의명분이라는 옷을 덧입혀 주면서 마치 그 명분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처럼 스스로 착각하게 만든다. 이를 통해 절박한 생존 본능이 맨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들은 희석되고 방어된다. 그 희석과 방어는 보는 이로 하여금 ‘나는 살고 싶다’는 적나라한 생존의 욕망과 정면에서 마주치는 부끄러운 순간을 좀 피할 수도 있게 해주는 것이다.

유희정 정신과 전문의 경상대병원 hjyoomd@unitel.co.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