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사(山寺)의 스님은 가는 인연은 가는 대로 보내고, 오는 인연은 오는 대로 맞아야 한다고 말한다.
경북 봉화군 청량사 주지 지현(智玄·48) 스님이 수필집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세상을여는창)을 펴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4편으로 나눠 산사의 삶을 드러낸 책이다.
현재 종회의원, 영주 장애인복지관장을 맡고 있는 그는 종단 내의 떠오르는 차세대 주자. 1990년 폐사와 다름없는 청량사에 내려와 경운기를 타고 촌구석을 돌아다니며 포교를 해 청량사를 안동 봉화 영주 일대 포교의 중심 사찰로 키웠다. 또 4년 전 ‘산사음악회’를 열어 사찰마다 산사음악회 붐을 일으키게 했다. 지난해 서울팝스오케스트라를 초청해 개최한 청량사 산사음악회엔 무려 7000여명이 몰려들기도 했다.
그는 이 책에서 바쁜 삶 속에서도 틈틈이 적어낸 청량사 사람들과의 인연을 잔잔히 들려준다.
초파일마다 험한 산길을 거쳐 청량사를 찾는 시각장애인 김 처사에게서 삶의 기쁨을 엿보고 미국 대학에 유학 중이던 아들을 위암으로 잃은 어머니에겐 그리움에 얽매이지 말라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또 ‘산꾼 할아버지’ 이대식옹의 유쾌한 삶의 태도를 보여 줬다. 그의 글을 보면 소중하면서도 얽매여서는 안 되는 인연에 대한 깨달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왜 그 길을 걸었을까’(호미)는 26년째 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을 고집하는 원공(圓空·60) 스님과 11명이 2002년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경기장 20곳을 도보로 순례한 대장정의 일지다. 이들은 123일간 하루 평균 35km, 총 4000km를 걸었다. 걷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길가마다 널려 있는 쓰레기를 줍고 도라지씨를 뿌렸다. 걷다가 어두워지면 야영지, 민가, 여관, 목욕탕, 남의 집 마당 등 가리지 않고 잠을 잤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생라면이나 주먹밥을 먹어가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었다.
‘머문 자리는 늘 깨끗이 하고 떠나라’는 원공 스님의 말씀은 물리적 자리뿐만 아니라 마음의 자리에도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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