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42년 무하마드 알리 출생

  • 입력 2004년 1월 16일 18시 40분


“당신이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사람들은 당신을 외면할 거요.”(존 레넌)

무하마드 알리. 그에게 1960년대 미국사회는 ‘사각의 링’이었다.

세상은 시끄러웠다. 미국은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비틀스의 음악과 반전(反戰)운동, 히피문화가 미국을 휩쓰는 동안 맬컴 X와 킹 목사, 케네디 대통령이 차례로 암살됐다.

숨가쁜 시대였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 알리가 있었다.

링 위에서 몸놀림만큼이나 현란했던 그의 입담은 세상과의 삐걱거림이었다.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금의환향했으나 백인식당에서 몰매를 맞고 쫓겨나야 했던 알리. 그는 금메달을 오하이오 강물에 던지면서 자신의 본명(本名)도 내던졌다. “클레이는 조상들이 노예 때 쓰던 이름이다.”

1964년 그는 이슬람 개종을 선언했다. “파란 눈, 갈색 머리칼을 가진 사람들의 신(神)인 예수를 믿지 않는다.” 그리고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해 미국사회를 들쑤셔 놓는다.

그는 타이틀을 박탈당했고 선수생활도 금지됐다. 알리는 3년5개월의 재판 끝에 무죄판결을 받아냈으나 복싱선수로서 전성기인 20대는 지나가고 있었다.

1974년 알리가 32세의 나이에 조지 포먼에게 도전했을 때 주위에서는 그가 혹시 링에서 죽지 않을까 걱정했다. 해머펀치의 포먼은 무적이었다.

세기의 대결은 흑인노예들의 고향인 아프리카 자이르에서 열렸다. 그리고 세계는 ‘킨샤사의 기적’을 목격하게 된다. 알리는 경기 내내 무섭게 맞으면서도 쉴 새 없이 떠벌렸다. “이 정도 주먹은 계집애 거야. 이거밖에 안돼? 응? 진짜 이게 다야?” 그는 링의 래퍼(rapper)였다.

마침내 8라운드. 포먼은 서서히 다리에 힘이 빠져나가고 있다고 느꼈다. 그 순간 알리의 전광석화 같은 연타가 터졌다. ‘벌처럼 쏘았다.’ 그리고 끝이었다.

그것은 위대한 드라마였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천재는 채플린과 알리였다. 알리는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다시 수직상승(垂直上昇)했다. 그것은 인생에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노만 메일러)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