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톱 모델 클라우디아 쉬퍼가 로마의 한 패션쇼에 단 4분간 출현했을 때도 TV 시청자 450만 명이 미인에 넋을 잃는 바람에 도시 기능이 마비될 정도였다.
이 전설적인 에피소드는 미인 숭배가 극에 이르렀음을 증명하는 단적인 사례들이지만 요즘은 미인 경배차원을 뛰어넘어 광기의 수준에까지 이른 지경이다.
고작 한 뼘 크기의 얼굴, 그것도 각 부위의 각도가 약간 어긋난 것일 뿐인 지극히 미세한 차이가 여자의 일생을 좌우할 만큼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인간은 마음속에 이상적인 미인의 척도를 갖고 있으며 이 기준을 토대로 미녀와 추녀의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미인의 기준이 되는 모델은 예술작품에 등장하는 절세의 미인들이다. 그러나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을 만큼 고혹적인 이 미인들은 실제 모습이 아니다. 예술가에 의해 철저히 계산되고 연출된 가공미인들이다.
최초의 서양미술사인 ‘회화론’을 쓴 알베르티‘(1404∼1472)는 저서에서 완벽하고 이상적인 미인이 탄생한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기원 전 5세기 그리스 화가 제욱시스는 크로톤 섬의 헤라 신전을 장식할 미인(헬레나)상을 주문 받지만 절세미인의 모델을 찾을 수 없어 고민하다가 그 섬의 최고 미녀 다섯을 고른 다음 이들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들을 조합해 인조 미인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완벽한 미인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깨달았던 예술가들은 황금률(시각적으로 최상의 미를 느끼게 하는 비례)을 발견해 얼굴에 적용했고, 그 결과 미학적으로 가장 황홀한 아름다움을 지닌 미인들이 탄생했다.
예술가들이 신봉한 미의 교과서에는 콧구멍에서 턱 아래 선까지의 길이가 얼굴 전체 길이의 3분의 1이며, 입의 넓이가 코의 넓이의 1.5배가 된다는 등 이상적인 미인의 조건을 정밀지도처럼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는 이처럼 전통미술에 나타난 조작된 미인의 허상을 과감하게 깨부수는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도 있다. 바로 프랑스 여성 행위예술가인 오를랑(57)이다.
그는 미와 추의 경계를 허물고 미의 신화를 벗기기 위한 극한적인 방법으로 명작 속의 미인들을 선택해 자신의 얼굴과 신체를 뜯어 고쳤다. 자신의 몸을 미인의 허상을 깨기 위한 제물로 바쳤고, 성형수술 전 과정을 비디오와 사진으로 제작해 현대인들의 미인 숭배와 광기에 경종을 울렸다. 자연이 빚은 얼굴을 수학적인 비율로 교정해 미화시킨다는 고전적 예술관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이상적인 미의 부분들을 조합해 가공 미인을 만드는 것은 지금도 영화, 광고에서 흔히 애용되는 방법이다. 유명 여배우 얼굴에 다른 사람의 멋진 몸매를 겹쳐 찍거나, 특수모델의 예쁜 손과 발을 빌려 완벽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이처럼 완벽한 미인은 허구다. 그렇다고 아름다운 여자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그 길은 현실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마가렛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첫 장에 그 비법이 적혀 있다.
‘스칼렛은 미인은 아니지만 그의 매력에 한번 사로잡히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로…’
그렇다. 평균치의 용모를 절세미인으로 성형하는 연금술은 바로 ‘매력’인 것이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국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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