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38년 프랑코 바르셀로나 점령

  • 입력 2004년 1월 25일 18시 41분


“인류는 정의가 실패할 수 있음을, 인간의 정신이 폭력에 꺾일 수 있음을, 그리고 용기가 무망하게 산화(散華)할 수 있음을 스페인에서 배웠다.”(앙드레 말로)

스페인 내전. 그것은 선(善)과 악(惡)의 직선적 대결이었다.

이 20세기의 참혹한 비극은 1936년 스페인령 카나리아군도에 좌천돼 있던 프랑코가 군사반란을 일으키면서 시작된다. 국민이 선택한 공화파 정부를 마땅찮아 하던 대지주, 자본가, 가톨릭교회, 군부가 호응했다.

반란군은 쉽사리 수도 마드리드를 점령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민중의 저항은 거셌다. 대도시에선 반란군들이 대패했다. 스페인 민중의 힘은 전세계 지식인들을 흥분시켰다. 이상(理想)에 대한 정열과 행동에 대한 도취(陶醉). 스페인 내전은 예술인들의 행동주의 시대를 열었다.

세계의 지성들이 스페인으로 모여들었다. 말로, 어니스트 헤밍웨이, 조지 오웰, 스티븐 스펜더, W H 오든…. 오든은 “우리들의 사상(思想)은 육체를 갖는다”고 노래했다.

당시 세계에 회오리치던 보수와 진보, 파시즘과 자유주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그 이념적 긴장과 대립이 스페인 내전 한판에 응축되었다. 그것은 세계대전의 전초전이었고 ‘펜들의 전쟁’이었다.

3년간을 끌어온 내전은 그러나 공화파의 완패로 끝난다.

파시스트들의 국제적 연대가 공화주의자들을 압도했던 것이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프랑코에게 대규모 화력을 지원했으나 영국과 프랑스는 어정쩡했다.

1938년 1월 바르셀로나 함락. 1939년 3월 마드리드 점령.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에 이은 미국의 프랑코 정부 승인. 그것으로 끝이었다.

스페인 내전. 그것은 참으로 허망한 역사의 공전(空轉)이었다. 역사의 냉소(冷笑)였다.100만명 이상이 희생된 그 ‘피의 밭’에서 정작 자라난 것은 프랑코의 36년 철권정치였다.

천수를 누리다 간 프랑코. 그는 죽기 전 ‘적을 용서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내겐 적이 없다. 모두 사살되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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