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단지 내 방식대로 살고싶을 뿐…이진경의 ‘피플’

  • 입력 2004년 1월 26일 17시 48분


미국 팝문화를 배경으로 한 ‘피플’은 순정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이 바로 옆에 살아있는 인물처럼 현실감을 갖고 있다. 사진제공 길찾기
미국 팝문화를 배경으로 한 ‘피플’은 순정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이 바로 옆에 살아있는 인물처럼 현실감을 갖고 있다. 사진제공 길찾기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C타운. 1915년 스미스 부인이 만든 ‘C타운 과일주스’는 주위에 조금씩 알려지다가 1950년대 미국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 중 하나가 됐다. 이후 C타운은 일자리를 찾는 여성들이 몰려들면서 큰 도시가 됐지만 1980년대 과일주스 공장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가면서 쇠락한다. 그리고 1996년 예술가의 도시로 변신하려는 이 도시에서 조각가이자 대학 강사인 애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만화가 이진경씨(33)의 단행본 ‘피플’은 이처럼 독특한 설정에서 시작된다. 가상도시 C타운을 배경으로 한 ‘피플’은 1995년부터 ‘윙크’ ‘믹스’ ‘나인’ ‘월간Na’ 등 다양한 만화잡지들에 발표된 작품들을 최근 2권의 단행본으로 묶은 것.

이 작품은 순정만화 장르로 분류되긴 하나 수려한 외모를 가진 남녀의 사랑을 기대하면 실망하기 쉽다. 상처받은 여성, 혼혈아, 비주류 예술가, 동성애자 등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인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남자를 붙잡기 위해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하다가 신경쇠약에 걸린 글로리아가 자살한다거나, 남녀 복싱대회에 출전한 혼혈 여경(女警) 맥스가 경기도중 발차기로 상대 남자 선수를 KO시킨다는 에피소드는 순정만화와는 거리가 멀다.

‘피플’은 작가의 말대로 ‘페미니즘’을 지향하나 주제를 어설프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게 장점.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에피소드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유명해진다거나 바쁜 대외 활동에는 관심 없어요. 그저 무언가를 만들고 싶을 때 만들어 볼 수 있는 ‘적은’ 자유만 원할 뿐이지요.”

이 말은 주인공 애니의 대사. 그러나 이 말은 저자가 다른 여성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얘기이기도 하다.

개성적인 그림체도 독특하다. 짙은 색감과 굵은 데생 선은 국내에서 보기 드물다.

1994년 데뷔한 이씨는 2001년 만화웹진 ‘코믹스투데이’에 연재하던 ‘사춘기’를 단행본 2권으로 출간했고, 격월간 만화잡지 ‘오후’(Owho)에 ‘저기 도깨비가 간다’를 연재하고 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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