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고구려사를 중국 변방 소수민족의 역사로 취급해 중국사의 한 부분으로 편입시켜 온 것은 동북공정이 처음은 아니다. 이는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이후 이미 확립돼 온 것으로 중국 역사 교육의 기본 내용이다. 중국 내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들의 역사 인식 속에서 고구려는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 변방의 소수민족 정권으로 자리 잡아 온 게 사실이다. 또 돌이켜보면 고구려사 문제에 대해 중국 학계는 오래전부터 보다 명료한 결론을 갖고 있었다. 즉 고구려사는 조선 역사인 동시에 중국 동북지방사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경직된 이분법 득보다 실 ▼
이러한 시각은 고대 한 국가의 역사가 현재 두 국가의 역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역사 공간에 대한 공유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사실 과거 한 국가의 역사가 현재 여러 나라에 의해 공유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허다하다. 그것은 인류사회 발전에는 복잡한 역사과정이 존재해 왔고 현존하는 국경선도 이러한 역사 발전의 한 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고구려사와 관련해 경직된 이분법적 접근보다 과거 역사의 공유라는 인식 아래에서 접근하는 자세가 절실하게 요청된다.
중국 학계가 고구려사를 조선 역사의 주요한 부분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국에서 출판된 많은 저작물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중국의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조선사 부분은 고구려사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중국 학계는 고구려를 ‘중국 동북지역 소수민족 정권’으로 규정하고 고구려사를 ‘중국 동북지역의 지방사’로 다루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 중국측이 이러한 방향에서 고구려사의 위상을 정립해 갈 경우 우리가 이를 거부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것은 고구려사의 상당 부분이 중국 동북지역에서 기원했고, 705년간 고구려 통치의 대부분도 바로 이 지역을 대상으로 했다는 사실로 볼 때 중국이 그들의 주권적 영역으로서의 동북지역을 포기하지 않는 한 705년간의 역사 기술인 고구려사를 그들의 역사 범주에서 완전히 배제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중국측이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 또는 ‘중국 중앙정부 관할의 지방정권’으로 규정해 간다면 이는 우리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고구려사의 성격 규정에서 조선사의 주요 부분임을 부인하는 것이며, 또 지금까지 중국 학계가 견지해 왔던 과거 역사의 공유 인식과도 배치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세심한 관찰이 요구되지만 동북공정의 한 구성 부분인 고구려사에 대한 중국측의 연구는 지금까지 중국 학계에서 정립되어 온 ‘과거 역사의 공유’라는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역사 인식 속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과거역사 공유' 적극적 자세 필요 ▼
따라서 우리는 고구려사의 귀속 문제에 대한 중국 학계의 연구 동향을 세심히 관찰하면서 좀 더 이성적이며 체계적인 대응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취약한 고대사 연구 역량을 강화해야 할 것이며, 특히 중국측이 한국과 북한의 연구 성과에 대한 자료수집과 번역을 동북공정의 중요 사업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과 같이 우리도 고구려사나 발해사에 대한 중국측의 연구 성과를 적극적으로 수집 정리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한중 양국이 지향하고 있는 협력적 동반자 관계의 구축을 위해서는 양국의 신뢰 구축이 절실히 요구되며 이를 위해서는 역사 인식의 공유도 중요하다. 고구려사에 대한 우리의 접근방법도 이분법적이고 국수적인 민족감정보다 실사구시와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입장에서 모색되어 가야 할 것이다.
박두복 외교안보연구원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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