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여평 철거 현장의 시멘트 더미 가운데 긴 돌(장대석)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갑자기 상인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런 게 문화재면 우리 집에도 넘쳐난다.” “시민단체 말만 듣고 문화재청이 줏대 없이 흔들린다.”
철거에 이르기까지 세입자들의 반발이 거셌던 데다 공사중단으로 생계에 지장을 받게 된 상인들은 계속 목소리를 높였다.
장대석이 나온 곳은 현재 영업을 중단한 한정식 ‘장원’. 이 집 주인 고태석씨는 “이 돌은 문화재가 아니라 1982년 집수리를 할 때 발 디딤용으로 외부에서 들여와 사용한 돌”이라는 사실확인서를 종로구청에 내기도 했다.
상인들은 “이런 디딤돌은 부근 한옥 어디에든 있다”며 조사단을 인근 한옥으로 일일이 안내하기도 했다. 종로구청 재개발팀 관계자도 “이 일대는 궁터도 아닌 데다 1910∼1920년대 새로 지은 집들이라 조선시대 유물이 남아있을 리 없다”고 주장했다.
현장을 둘러본 조사단은 돌 하나만 가지고는 당장 시굴(試掘)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조사단은 영세상인들의 영업권을 의식한 듯 철거공사를 재개할 수 있도록 했다. 대신, 철거물을 치울 때 지표조사 전문기관 입회하에 반출토록 하고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유물이 나올 경우 지적도와 지표현황 등을 바탕으로 시굴조사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겉보기에 하찮게 보이는 돌덩이 하나도 문화재가 될 수 있다는 심증 하에 즉각적으로 공사중단 결정을 내린 상황은 업그레이드된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증명했다. 하지만 생계에 영향 받게 된 상인들의 분노를 보면서 관계당국의 차분한 상황 판단에 대한 아쉬움도 남았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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