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물관리법 공포 5돌]"역사 기록하는 자세로 자료 정리"

  • 입력 2004년 1월 28일 19시 20분


27일 좌담회에 참석한 김한욱 정부기록보존소 소장, 이만열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김선영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이사, 김익한 명지대 교수(왼쪽부터)가 기록물관리법 공포 5주년을 맞아 그 동안의 성과 및 앞으로의 과제에 관해 토론을 벌이고 있다. -박주일기자
27일 좌담회에 참석한 김한욱 정부기록보존소 소장, 이만열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김선영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이사, 김익한 명지대 교수(왼쪽부터)가 기록물관리법 공포 5주년을 맞아 그 동안의 성과 및 앞으로의 과제에 관해 토론을 벌이고 있다. -박주일기자
《기록물관리법이 29일 공포 5주년을 맞았다.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 및 각종 기록을 압축적으로 정리하고, 국민의 손쉬운 활용을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법은 정부기록 보존업무를 크게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관해 27일 본사 20층 회의실에서 이만열(李萬烈)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김선영(金善永)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이사, 김한욱(金漢昱) 정부기록보존소 소장의 좌담을 김익한(金翼漢) 명지대 교수 사회로 실시했다.》

▽사회=1999년 제정된 기록물관리법은 정부기록물의 과학적 체계적인 관리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당시 기록물보존소 소장으로서 법 제정을 주도한 김 이사께서 법 제정 배경을 설명해 주시죠.

▽김 이사=96년 3월 정부기록보존소 소장으로 취임한 직후 벌어진 해프닝이 법 제정의 계기가 됐어요. 당시 한 시사월간지가 전직 대통령의 집무실 대화 내용을 담은 녹음테이프를 부록으로 준다는 광고를 냈습니다. 청와대가 발칵 뒤집혔고, 사태파악 지시가 떨어졌지만 보존소는 당시 소장 중인 테이프의 목록 및 수량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어요.

▽김 소장=공직사회의 의식이 빠르게 바뀌면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 기반이 생겼다는 점은 평가할 만합니다. 우선 711개 기관이 기록보존 기관으로 지정됐고, 국회 사법부 군에도 기록물 관리기관이 올해 안에 설치될 예정입니다. 또 정부의 전자문서 결재 시스템에서 중요 자료는 자동으로 보존소로 연결되도록 했습니다.

▽사회=외형적 성장에 비해 의식변화가 뒤따르지 못했다는 반성도 있습니다. 시민이 정부자료의 열람을 요청할 때 정부에선 ‘안 된다. 자료가 없다’며 거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습니까.

▽김 이사=정보가 늘어났다고 좋은 것은 아니에요. 시간 인력 공간이 낭비되지 않도록 공직자들이 정보 및 문서를 최대한 정리하고 간소화하는 작업이 진짜 중요합니다. 보존할 문서의 질도 문제죠. 내가 보존소장으로 취임해 보니까 (공직자들이) 훗날 중요한 자료는 문제가 될까봐 폐기했어요. 보존된 것은 재산, 인사기록 등 증빙서류가 대부분이었고 중요 정책의 결정과정을 담은 자료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김 소장= 지방자치단체 문서담당 부서는 기피 부서라는 현실이 기록물 보존 문제를 악화시키는 측면이 있어요. 아키비스트(archivist)라는 기록관리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현재 문서관리 인력의 4분의 1 이상을 전문요원으로 채우도록 규정했지만, 자치단체에선 정원과 예산문제를 들어 난색을 표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도 열람 건수가 5년 동안 1만7000건에서 13만600건으로 8배가량 늘었습니다.

▽이 위원장=기록물의 중요성을 국민들이 깨닫고, 정부 차원에서 보존 관리 방법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해요. 국민은 정부의 행정내용을 알 권리가 있어요. 예산의 뒷받침을 통해 자료를 디지털화한다면 지방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 이사=법 제정만으론 한계가 있어요. 기록물 관리는 공무원만의 책임이 아니고 국민의식의 총체적 산물이지 않습니까. 기록물 법을 제정할 당시 국가정보원 외교통상부 법무부 국방부 등 소위 힘 있는 기관들이 반대했고, 행정자치부 내부에서도 쓸데없는 일을 한다는 핀잔이 있었어요. 이런 의식을 바꿔야 합니다.

▽사회=빠르게 성장하는 정보관리 환경에서 앞으로 어떤 일을 추진해야 할까요.

▽김 이사=과학적 관리의 틀을 세워야 합니다. 기록물 보존의 의무화가 필요해요. 과거엔 대부분 중요정책은 구두(口頭)로 처리했을 뿐 기록을 남기지 않았거든요. 문제가 발생하면 지시자는 뒤로 숨고 기안한 실무자만 책임을 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중요 정책은 검토보고서 대화록 회의록을 의무적으로 생산·보존하도록 함으로써 정책의 공과를 사후에 평가받도록 해야 합니다. 전산화도 필수죠. 문서 목록을 전산화해서 업무담당자가 자기에게 불리하더라도 파기하지 못하도록, 문서추적이 가능케 해야 합니다.

▽이 위원장=법 제정 이전에 사회의 기록물을 남기겠다는 자세가 아쉽습니다. 지금도 국정의 최고회의체인 국무회의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지 않아요. (TV를 보면) 국무위원들이 열심히 메모는 하고 있지만, 결과물만 요지 중심으로 간단히 기록할 뿐입니다. 국무회의는 기록과 녹음으로 생생히 남겨야 해요. 조선시대에도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사관(史官)이 기록했습니다.

▽김 소장=정보공개 문제는 미묘한 양면성을 지닌 사안입니다. 정부가 정보를 독점하지 않으려면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 하지만, 최종 정책결정 이전에 공개될 경우엔 혼란이 빚어질 수 있거든요. 국무회의 기록도 어느 선까지, 어느 시점에 공개해야 할지가 논란이 됐었죠. 회의록이 낱낱이 공개된다면 회의 참석자가 자유롭게 발언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사회=지난 5년 사이에 시민단체의 판공비 자료공개 요구가 관철되는 등 정보관리 및 공개에 대한 성공사례는 기록의 위대한 힘을 알 수 있게 해줬습니다. 정부기록이 활용된 사례를 들어주시죠.

▽김 이사=한 시민은 조상의 이름을 확인해 문중이 갖고 있던 50억여원대의 땅을 되찾기도 했습니다. 또 국방부가 미국과 노근리 사태를 놓고 협상할 때 우리가 갖고 있는 자료라고는 당시 신문기사 1건이 전부였어요. 우리가 어떤 주장을 하면 미국은 다음 회의 때 새로 발굴해 낸 문서를 제시하면서 반박했습니다. 자료의 소중함이 절실했습니다.

▽이 위원장=기록문화는 민족의 수준과 맞물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려면 철저하게 기록을 남기는 의식과 관행이 세워져야 해요. 정보관리 우수기관을 포상하는 제도를 도입해 기록문화 정착을 앞당겨야 합니다.

▽사회=참여정부가 앞세운 ‘참여’ 정신은 정부의 공공행위와 국민과의 소통을 뜻합니다. 이를 위해 공공기록을 잘 관리하고, 국민들은 공개정보를 통해 정책에 개입,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정리=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이만열 국사편찬위원장▼

기록물 보존관리의 중요성은 음성거래 차단을 통한 사회의 투명성 확보, 책임소재의 확실성과 행정 능력의 효율성 제고, 역사자료의 축적 등에 있다.

그러나 5년 전만 해도 공공기록물을 남기지 않는 풍토가 강했다. 기록을 보존 관리해야 할 각급 기관이 무차별적으로 자료를 폐기하는 바람에 정부 기록물의 빈곤 현상이 두드러졌다.

이런 상황에서 1999년 기록물관리법이 제정되면서 공공기록물 관리의 법적인 근거가 마련됐다. 하지만 오늘날 기록물관리의 체계적인 연구, 전문인력 양성 및 배치, 자료의 불법폐기금지와 같은 법 제정의 당초 목표들이 과연 얼마나 실현됐는지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무엇보다 △기록물 보존 연한 및 처벌, 활용에 관한 법 규정의 전면 개정 △기록관들에 대한 교육 강화 △정부기록보존소 산하 국가기록연구소 설치를 통한 연구 및 편찬사업 추진 △국민열람센터 운영 △광역자치단체 및 공공기관의 기록관리소 신설 등이 시급하다.

▼김선영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이사▼

1999년 법 제정 당시 정부 문서는 약 40만권에 불과했다. 광복 이후 정부의 과(課) 단위 부서 3만여개가 남긴 기록물이 부서당 연평균 0.27권에 그쳤다는 이야기다. 반면 미국은 약 2억권, 중국은 1억2000만권, 프랑스는 6000만권의 압축 정리된 문서를 소장하고 있다.

미국 중국 인도 등 대다수 국가들은 기록보존 인력의 3분의 1 이상을 박사급으로 배치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다. 한국은 보존소 인력이 130명 선으로 조선시대의 춘추관 인력(163명)보다 적다.

하지만 기록물관리법 제정은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 정부의 임의적인 문서 폐기가 불가능해졌고 문서의 추적관리가 가능해졌다. 중요 정책에 대한 검토보고서, 회의록 작성이 의무화되면서 국정의 투명성이 제고됐다.

그럼에도 현재의 법은 미완성 상태이다. 앞으로 정보공개법, 사료 수집 및 보존에 관한 법률 등과 통합 관리되는 법률로 발전돼야 한다.

▼김한욱 정부기록보존소장▼

기록물관리법은 기록관리가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행정을 구현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주요한 수단이라는 인식을 만들어냈다. 또 711개 공공기관이 자료보존 대상으로 지정됐으며, 지난해 말 기준으로 100여개의 기관에서 자료관과 자료관 시스템 설치를 완료했거나 추진 중이다.

올해부터 시행에 들어간 새 기록물분류기준표는 711개 공공기관의 4만2000여개 과를 대상으로 총 420만개의 단위업무에 대해 보존 기간 및 방법을 구체적으로 규정토록 했다.

특히 대통령 기록물 등 국가 중요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수집 관리하게 된 것도 큰 의미가 있다. 법 제정 이전 연 1만∼2만권에 불과하던 공공기관의 기록물 이관량이 매년 10만권 이상으로 늘었고, 기록보존소의 전체 문서는 186만권으로 증가했다.

정부는 국가기록물의 안전한 보존관리를 위해 예산 1400억원을 투입해 경기 성남시에 최고 수준의 국가기록물 전문 서고(書庫)를 짓고 있다.

▼참석자 프로필▼

▼이만열▼

▽ 서울대 사학과 졸업

▽ 서울대 문학박사

▽ 숙명여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현)

▽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현)

▼김선영▼

▽ 육군사관학교 졸업

▽ 행정자치부 정부기록보존소 소장

▽ 행정자치부 소청심사위원회 위원

▽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이사(현)

▼김한욱▼

▽ 한국방송통신대 졸업

▽ 제주도 기획관리실장

▽ 행정자치부 제주 4·3 처리지원단장

▽ 행정자치부 정부기록보존소 소장(현)

▼김익한▼

▽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 일본 도쿄대 문학박사

▽ 명지대 기록관리학과 교수(현)

▽ 한국 국가기록연구원 총무처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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