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숙
종일 달려와서 멈춘 곳, 알고 보니
내 떠나온 곳 아니겠습니까
이제 다 왔다는 것인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것인지
거슬러 올라가는 눈발, 공중에 떠 있는
숲. 경계선을 허물며 먼데서
들판이 하얀 쌀밥을 퍼 담고 있습니다
- 시집 ‘탁자 위의 사막’(문학세계사) 중에서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지만 나는 수만 번째 같은 강물에 몸을 던지는 삼천 궁녀 같은 눈송이들을 안다. 수억 년째 같은 언덕에서 똑같은 꽃을 피우는 진달래를 안다. 나는 내가 나의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였으며, 아들이며 손자일 것을 안다. 그러기에 어느 시인은 ‘삼백 년 세월은 이 산의 깃을 흔들며 지나갔지만/기슭의 명아주 잎새 하나도 바꿔놓지 않았다’(이기철 ‘취중문답’ 중)고 하지 않았는가.
‘종일 달려와 멈춘 곳’이 ‘내 떠나온 곳’임을 알았다니 저 눈발의 눈이 고승처럼 밝구나. 누구든 평생을 달려서 도달하는 곳은 물리적인 지점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인즉, 저 눈발이 있던 구름밭과 내려앉은 시금치밭이 서로 다르지 않다.
‘거슬러 올라가는 눈발, 공중에 떠 있는 숲’이여, 하얀 눈발이 이승과 저승의 경계마저 지우는구나. 하얀 쌀밥이 이승과 저승을 다 먹여 살리는구나. 설 명절 지나 쌀뒤주 비었어도 온 들판엔 하얀 쌀밥이 펄펄.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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