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추사 탁본展 타계 사흘전 쓴 글씨 등 70점 한자리에

  • 입력 2004년 2월 1일 17시 26분


비석이나 현판 글씨는 예로부터 글씨의 최고 경지라 했다. 죽은 사람의 영혼과 통하는 ‘영매(靈媒)’적 기능이 강하기 때문에 쓰는 사람은 온 정성을 다해 썼다. 아울러 제의적 성격도 있다보니 엄격하면서도 깊이 있는 서체가 요구되었다.

그렇다면 추사 김정희 (秋史 金正喜·1786∼1856)가 쓴 현판이나 비석글씨는 어떠했을까. 추사 글씨를 탁본해 모은 이색 전시회가 마련된다. 친필 전시회는 여러 번 있었지만, 탁본 전시회는 드물었다.

정쟁(政爭)으로 인해 제주도와 함경도 북청에서 10여 년 간의 유배생활을 끝낸 추사는 60대 후반부터 일흔한 살로 세상을 뜰 때까지의 말년을 부친의 묘소가 있던 경기도 과천에서 보냈다. 이런 인연으로 과천시는 한국미술연구소(소장 홍선표)와 공동으로 4∼18일 경기도 과천 시민회관에서 ‘추사체의 진수, 과천 시절-추사 글씨 탁본전’을 개최한다. 31세 때 쓴 최초의 비문 ‘以威亭記(이위정기)’에서부터 죽기 사흘 전에 썼다는 서울 봉은사의 현판 ‘板殿(판전)’까지 70점이 전시된다.

홍 소장은 “전각이나 누각 현판들은 폭이 3m에 이르는 대작들이 많은 데다 전시작 중 40% 정도는 글씨의 원본 자체가 없음을 감안할 때, 이번 전시회는 친필과 함께 추사체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추사 예서 중 백미로 꼽히는 ‘一爐香閣(일로향각)’은 현재 통도사 현판이지만 1847년 영천 은해사 화재로 전각들을 새로 짓는 과정에서 추사가 쓴 현판 중 하나로 추정된다. 굳세고 힘차면서도, 굵고 가늘기 차이가 심한 필획으로 특유의 파격적 조형미를 보여준다.

봉은사 현판 ‘板殿’ 글씨처럼 고졸하면서도 강건한 힘이 들어 있는 ‘불광(佛光)’도 눈에 띈다. 경북 영천 은해사 내 불광각에 걸려 있던 현판 글씨다.

이 전시회를 기획한 문우서림 김영복 대표는 “현대 미술에도 판화가 있듯, 잘 된 목각이나 석각의 탁본글씨는 원본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며 “추사 탁본은 대부분 만년작이 많은데 말년의 쓸쓸함과 원숙미, 천진난만함이 뒤섞여 추사체의 정수를 보여 준다”고 말했다. 02-3677-2064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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