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어서일까? 바야흐로 복슬복슬한 털로 뒤덮인 곰들의 전성시대다. 뭔가 둔중한 듯하면서도 꾀가 많다는 이 동물은 동글동글한 몸의 품새에 덧붙여 꿀을 좋아하는 특성에 이르러서는 어딘가 귀여운 면모까지 보여준다. 이런 복합적이고 양가적인 성격은 한발만 더 나아가면 신령스러움으로도 종종 변모해 왔다. 우리나라의 창세기 신화라 할 단군신화에서부터 곰이 등장하지 않는가?
‘곰이 되고 싶어요.’ 2003년 베를린영화제 최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과 시카고 국제어린이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우리나라 극장가에도 개봉했다더니 이를 각색한 동명의 그림책 두 권이 각기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다. 출판사 달리에서 나온 것은 그림 위주의 유아나 초등학교 저학년생을 위한 책이고, 문학동네 것은 글이 훨씬 많아 좀 더 큰 아이들, 혹은 청소년과 어른들을 위한 책으로 보인다. 얼마나 내용이 좋았으면 한 가지 애니메이션에 두 가지 판본의 각색판이 나왔을까?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이고 그림책은 그림책이 아닌가? 만화영화용 그림들이 책으로 옮겨진 탓에 아무래도 그림 속에 깊이가 부족하게 느껴진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곁에 두고 곱씹어 보거나 아이들에게 토론거리로 제시하고 싶은 내용들로 가득 차 있는 것에는 틀림이 없다.
새끼를 사산하고 시름에 잠겨 있는 엄마곰의 처연한 슬픔을 묘사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빠곰은 엄마곰을 위로하고 싶어 인간의 아기를 훔쳐다 놓고 떠나고, 아기를 쳐다보지도 않던 엄마곰은 결국 아기를 거두어 하나의 곰으로 길러가게 된다. 그러나 이 아이는 결국 아들을 찾아온 생부에게 발견되고, 인간의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사람의 세계에 끝내 적응하지 못하던 아이는 결국 사람의 세계를 떠나고 여러 시련을 극복해가면서 나중엔 원하던 대로 진짜 곰이 된다. 자,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곰을 보여주는 우리 단군신화와는 정반대로, 여기서는 사람이 곰으로 되길 원한다는 설정부터가 우선 눈길을 끌기도 하지만, 아빠가 곰으로 길러지던 아이를 찾아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더래요,가 아니란 게 더 문제적으로 여겨지지 않는가?
나는 이 이야기를 읽고 요즘 들어 부쩍 반항이 거세진 내 어린 아들과 나의 관계를 생각했다. 청소년도 아니고 아직 초등학교도 안 간 아이에게 이런 소년의 성장과 자기 길찾기의 여로를 곧장 연결지어 생각하는 것이 조금은 우습기도 하지만. 인간의 세계에 가둬두려는 부모를 떠나 곰이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부모들의 품속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을 찾아 떠나려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부모들이 보기에 그 길은 너무나 위험하고 아예 사람이 가서는 안되는 길일지라도 아이들은 그렇듯 막무가내로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고 싶어 한다. 아무리 강압적으로 붙들어 매어 보려고 해도, 이미 나와 다른 개체이자, 나와는 다른 욕망을 지닌 아이들의 자기길 찾기를 막을 수는 없는 것일까?
아마도 이 책들은 아이들보다 부모들이 읽어야 할 우화로 읽힌다. 아이를 바른 길로 이끈다면서 늘 자신의 입장이 옳고 그것이 아이를 위하는 길이라고 단정 짓고 강요하면서도 아예 그게 강요라고 생각을 못하는 우리 부모들이 말이다!
주미사 동덕여대 강의전임교수·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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