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기씨를 병원으로 옮긴 실험극장 이한승 대표는 “(김씨가) 거의 매주 등산을 다닐 정도로 건강했는데 너무 당황스럽다”며 “워낙 진지한 성품이어서 드러내놓진 않았지만 이번 공연에서 긴장을 많이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다이사트 역을 위해 두 달간 매일 7∼8시간 연습에 몰입했다. 이에 대한 연극 팬들의 화답인 듯, 29일 오후 개막한 ‘에쿠우스’는 첫날부터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개막 공연이 끝난 뒤 많은 관객이 커튼콜에서 기립박수를 보냈다. 요즘 연극계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에쿠우스’는 말의 눈을 찔러 죽인 광기 어린 소년 앨런(조재현)과 그를 치료하며 감싸 안으려는 다이사트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 축을 이루는 작품. 김씨는 이 작품에서 차분하면서도 힘 있는 캐릭터를 선보여 객석의 감동을 자아냈다. 작품 내내 얼굴의 표정과 발성, 호흡을 들뜨지 않게 유지해가는 관록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김씨는 다이사트를 안으로 고뇌를 감춘 캐릭터로 해석했다. 그런 만큼 다이사트 연기가 쉽지 않다는 게 연극인들의 평이다. 특히 450석 규모의 중극장에서 ‘속삭이는 듯한’ 발성을 객석 전체에 들리도록 연기해야 하는 부분이 어렵다는 것이다. 연출자 김광보씨는 “김 선생이 ‘그렇게 묵직한 발성을 하려니까 창자가 끊어지는 것처럼 힘들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고 전하며 김씨의 열연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연극 팬들에게 가장 안타까운 것은 그런 열정이 담긴 김씨의 호연이 두 차례밖에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하루빨리 일어나 다시 무대에서 기립박수를 받을 수 있는 날을 기다려본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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