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여성 포르노 사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시대가 됐어도 그 ‘명성’은 여전하다. 지난달 말 동아일보를 비롯한 한국의 모든 중앙언론사는 누드모델 이사비(25)의 기사를 일제히 실었다. 지난해 여성 연예인들의 ‘상업 누드’ 사진 열풍이 불 때 큰 관심도 갖지 않던 매체들이었다. 이사비가 한국의 첫 플레이보이 모델이기 때문이었다. 어떤 신문은 “당당한 누드”라는 찬사까지 보냈다.
● 선망의 플레이메이트
지난달 31일 기자와 만난 이사비는 “이제 우리 사회도 성적으로 개방됐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것과는 사뭇 달랐다.
플레이보이는 1953년 12월 미국의 27세 된 남성 휴 헤프너가 혼자 8000달러를 들여 만든 남성 잡지다. 처음으로 여성의 누드 사진을 실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여성은 당시 섹스 심벌로 떠오른 메릴린 먼로였다.
이후 플레이보이는 ‘개방된 성(性)의 선구자’라는 평과 ‘여성의 상품화’라는 비난을 들으며 성장했다. 그동안 잡지 이외에 유료 케이블채널, 영화, 인터넷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2002년의 총수입은 2억7740만달러. 이 가운데 잡지의 수입은 약 30%인 9470만달러다.
미국에서 매달 320만부가 팔리는 플레이보이 잡지에는 플레이메이트라고 해서 한 달에 한 명씩 여성 모델의 누드 사진이 실린다. 이 플레이메이트는 미국 국적을 가진 사람에 한정된다. 플레이메이트는 배우를 지망하는 여성들이 선망하는 대상이기도 했다.
사실 이사비는 알려진 것처럼 플레이보이 잡지의 모델은 아니다. 따라서 이번에 그가 촬영한 누드 사진이 미국 플레이보이 잡지에 실리지는 않는다. 다만 인터넷과 모바일에 플레이보이 모델이라는 이름으로 사진과 동영상이 오른다.
한국에서 플레이보이 영상 사업권을 갖고 있는 ㈜씨맥스커뮤니케이션즈는 올해 잡지 사업권도 계약해 6월경 이사비를 표지모델로 한 한국판 플레이보이를 발간할 예정이다. 플레이보이는 일본, 대만을 비롯해 세계 18개국에서 각 나라 판이 제작돼 매달 180만부가 팔리고 있다.
● 쇠퇴하는 플레이보이
플레이보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원자폭탄의 공포와 숨 막힐 정도로 엄숙하고 폐쇄적이었던 미국의 사회 분위기에 대한 반발의 산물이었다. 플레이보이는 여성용 먹는 피임약, 로큰롤 음악과 함께 미국 사회의 ‘성 혁명’을 이끌었다는 평을 받았다. 물론 여성을 바비 인형 같은 성적 장난감으로 상품화했다는 비난도 거셌다.
창간 50주년이던 지난해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월스트리트 저널, LA타임스, 영국의 더 타임스, 인디펜던트 등 유수한 신문들이 플레이보이 50주년 관련 기사를 실은 것도 그런 사회적 영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플레이보이는 여성의 벗은 몸과 진지한 내용의 기사, 인터뷰를 적절히 혼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스티븐 킹, 이언 플레밍, 아서 C 클라크, 마이클 크라이튼, 필립 K 딕 등이 글을 썼다. 살바도르 달리, 버트런드 러셀, 장 폴 사르트르, 마틴 루서 킹, 비틀스, 피델 카스트로, 맬컴 X, 알베르트 슈바이처와 인터뷰를 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76년 대선 당시 “나는 마음속으로 많은 여인들과 간음을 한다”고 인터뷰에서 말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플레이보이 왕국은 쇠퇴하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클릭 한번으로 포르노를 접할 수 있다. 남성 잡지 중에는 제일 많이 팔리지만 70년대 700만부 판매의 절반에 불과하다. 독자의 절반 이상이 35세를 넘었다.
젊은 남성들은 브리트니 스피어스 같은 연예인들의 아슬아슬하게 가린 사진이 실린 ‘맥심’이나 ‘FHM’ 같은 잡지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판 플레이보이가 나온다. 첫호의 표지모델이 될 이사비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상업누드’ 열풍에 마침표를 찍은 것일까, 아니면 앞으로 여성 연예인들의 ‘벗기’를 더욱 자연스럽게 하는 기폭제가 된 것일까.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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