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조계종에서 최근 열반한 노스님들의 뒤를 이을 차세대 선지식(善知識)의 한 명으로 꼽히는 고우(古愚·68·각화사 태백선원장) 스님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뜻밖이었다.
3개월간의 동안거(冬安居)가 끝나는 5일 경북 봉화군 각화사에서 만난 고우 스님. 그에게 이날은 뜻 깊은 날이었다.
그는 2002년 11월 31명의 스님을 이끌고 가행정진(加行精進)을 시작했다. 가행정진은 하루 3시간만 자고 15시간씩 참선 수행을 하는 것. 오후 10시에 잠든 뒤 오전 1시에 일어나 중간 중간 약간의 휴식과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참선을 해왔다. 고우 스님은 주지 철산 스님과 함께 수좌들의 수행을 점검하고 뒷바라지했다. 그리고 15개월 만인 이날, 발병 등으로 중간에 그만둔 9명 외에 22명의 스님이 무사히 수행을 마쳤다. 주위에선 고우 스님의 인도가 아니었다면 ‘몇 번씩 까무러치게 된다’는 가행정진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하고자 하는 의지와 행위가 일치하면 25시간 수행도 할 수 있습니다. 고행이 아니라 좋아서 하는 것이니까 버티지요. 그렇기 때문에 발심(發心·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는 15개월의 가행정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전날 스님들의 회의에서 “누구도 ‘한 소식(깨달음)’ 하지 못했는데 15개월 가행정진을 했다는 것만으로 언론에 등장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인터뷰 거부 결의를 했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는 스스로 ‘깨치지 못했다’고 하지만 수좌(首座)계에선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제가 대오한 것은 아니지만 ‘정(正)’과 ‘사(邪)’는 구별할 줄 압니다. ‘사’란 유무(有無)에 집착하는 것이지요. ‘나’라는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면, 집착이 생기고 이기심이 나오고 자신에게 불이익을 주는 사람을 증오하게 됩니다. 반대로 ‘나’라는 실체가 없다고 생각하면, 불이익을 주는 사람을 증오 대신 자비로 대하게 됩니다.”
‘정’과 ‘사’를 구별하는 경지 또한 만만치 않아 보였다. 그 경지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도를 닦아서 부처가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원래 부처이고 우리가 듣고 보고 행동하는 모든 게 바로 선(禪)입니다. 선이란 무엇을 따로 찾는 게 아니라 ‘우리는 부처가 아닌 중생’이라는 착각을 부수는 것이지요. 깨달을 대상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머리 위에 머리를 하나 더 올리는 것’입니다.”
25세에 출가해 50년 가까이 선방을 떠나지 않은 그는 ‘세상 물정에 어둡다’면서도 요즘 세태에 대한 견해를 요청받자 척척 말씀을 이어나갔다.
“예전엔 지역갈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가 있으면 ‘그걸 없애보자’는 논의가 있었는데 요즘은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상대편은 없어져야 한다’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정글의 법칙’과 다를 게 없어요. 그건 바로 ‘나’와 ‘남’을 편 가르는 시각이 더욱 심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네가 나에게 피해를 줬으니 나도 너에게 응징한다’ 식의 대응을, 저는 테러를 전쟁으로 막겠다는 미국 대통령 ‘부시형(型)’ 대응이라고 봐요. 자신과 다르다고 대립하지 말고 자비를 바탕에 깔고 어떻게 대응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해제(解制·안거를 마치는 것)를 해서 홀가분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정해진 기한을 마친 것이 해제가 아니라 견성하는 순간이 바로 해제”라고 답했다.
봉화=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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