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국민 고통분담 호소에 동참하기 위해 음식값을 내렸다면서요. 고맙습니다. 한번 꼭 찾아가겠습니다.”
주씨는 YS의 전화에 감격해 “고맙습니다”만 연발하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YS는 약속대로 같은 해 6월 하순 청와대 식구들과 함께 향원을 방문해 주씨를 다시 한 번 감동시켰다.
‘한국 한정식의 대모(代母)’로 불리는 주씨가 이달 말로 50여년 주방 인생에서 은퇴한다.
광주에서 ‘장원’이란 요정을 운영하며 맛깔스러운 음식과 정중한 손님 접대로 유명했던 주씨가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 같은 이름의 요정을 차린 것이 1공화국 말기인 58년 9월.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고 76년엔 대지 305평에 3층 별관 건물을 지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YS뿐만 아니라 장면(張勉) 신익희(申翼熙) 조병옥(趙炳玉) 이후락(李厚洛)씨 등 거물급 정관계 인사와 정주영(鄭周永) 이병철(李秉喆)씨 같은 재벌 총수들이 장원의 단골들.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정부 부처를 초도순시할 때 반드시 장원에서 유자차를 수백잔씩 시켜 마신 일은 유명하다. 당시 장원은 ‘청운각’ ‘삼청각’ ‘오진암’ 등과 함께 한국 막후정치와 밀실회담의 본거지로 꼽혔다.
독실한 개신교신자인 주씨는 장원을 요정으로 운영하는 것이 신앙생활과 배치된다는 이유로 개업한 지 수년 만에 한정식집으로 바꿨다. 장원은 87년 경영난으로 폐업 위기를 맞으며 은행에 가압류됐다가 91년 9월 5일 완전히 헐렸다.
주씨는 91년 10월부터 지금의 향원을 운영하고 있다. 주씨는 종업원들에게 “손님의 술버릇이나 좋아하는 음식조차도 평생 비밀로 해야 한다”고 엄격히 교육시킨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MP(헌병)’.
주씨는 5일 은퇴 소감을 묻는 기자의 전화에 대해서도 “‘50년 한정식 인생’의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조용히 끝내게 해주십시오”라며 말을 아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댓글 0